외국인이 최근 프로그램 비차익매수를 통해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데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해석이 분분하다. 2분기 '어닝시즌'을 앞두고 한국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비차익매수 중 일부는 실제로는 '위장된 차익매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최근 1조7000억원을 웃도는 외국인 매수세가 국내 증시에 시사하는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증시 전망을 좋게 보고 여러 종목을 한꺼번에 대량 매수하는 비차익매수와 달리,차익매수는 단순히 현 · 선물 간 가격차를 이용해 무위험 수익을 추구하는 거래기 때문이다.

◆같이 움직이는 외국인 차익 · 비차익 매수


코스피지수가 1.62% 상승한 지난 21일 파생상품 전문가들은 프로그램 매매 추이에 주목했다. 이날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사들인 주식은 총 2807억원어치.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순매수액 2978억원과 엇비슷한 규모다. 외국인의 프로그램 매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프로그램 차익매수로 830억원,비차익매수로 1977억원을 각각 사들였다. 외국인은 이날뿐 아니라 최근 들어 부쩍 자주 비차익매수 방식으로 한국 주식을 사모으고 있다.

문제는 외국인의 비차익매수 중 일부가 차익매수로 볼 수 있는 정황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최근 몇 주간 외국인의 차익매수와 비차익매수 간 상관관계가 너무 높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이론적으로 차익매수와 비차익매수는 같은 방향일 이유가 없는데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선 지난 11일께부터 차익 · 비차익매수가 한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프로그램 차익 · 비차익매수 간 상관계수는 외국인이 순매도했던 6월 첫주만 해도 -0.17이었으나 지난주엔 0.97로 높아졌고 21일에는 0.99까지 치솟았다. 상관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음을 의미한다.
외국인, 프로그램 매수전략 수상하네
외국인은 국내 기관과 달리 차익매수를 비차익매수로 '위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행 규정상 프로그램 매매는 매매호가를 낼 때 한국거래소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국내 기관의 경우 단일 법인계좌를 사용하므로 비차익매수를 차익매수로 바꿔 신고할 수 없다. 그러나 외국인은 선물을 국내 지점에서 매수하고 현물 주식은 홍콩법인을 통해 매도하는 방식으로 주문을 낼 수 있다. 따라서 차익매수를 비차익매수로 둔갑시켜 신고해도 사후 검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외국인 비차익매수 의미 잘 따져야


외국인이 이 같은 매매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선물시장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심 연구위원은 "선물 · 옵션 동시만기일에 시장 참가자들은 차익거래 잔액이 어느 정도로 쌓여 있나를 기준으로 만기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며 "만약 외국인이 차익매수 상당부분을 비차익매수로 신고해 자신의 포지션을 숨겼다면 국내 기관들에 비해 만기일에 정보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외국인의 이 같은 매매 행태가 증시에 미칠 영향이다. 황창중 우리투자증권 투자정보센터장은 "비차익매수는 추가 상승에 강하게 베팅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최근 외국인의 비차익순매수는 기본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양호한 2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황 센터장은 그러나 "비차익매수 중 상당부분이 차익매수라면 최근 외국인의 순매수 행진이 갖는 의미는 희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