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패드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판매를 시작한 지 80일 만인 지난 21일 판매대수 300만대를 돌파했다. 아이패드는 본체와 모니터가 일체이고 손가락 터치와 가상자판을 통해 입력하는 일종의 태블릿 PC다. 물량이 부족해 미국에서만 팔다가 지난달 28일에야 9개 국가에서 추가로 발매한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인기다.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이 널리 보급되면 PC산업은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넷북이,장기적으로는 데스크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MS) CEO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주최로 열린 D8 컨퍼런스에서 엇갈린 전망을 내놓았다. 잡스는 PC가 달라진다고 했고 발머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농업국가 시절의 차는 모두 트럭이었다. 농장에서는 트럭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달라졌다. 지금 트럭은 차량 25~30대당 1대에 불과하다. PC도 트럭처럼 될 것이다. " 잡스는 승용차가 트럭을 대체했듯이 태블릿이 일반 PC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PC가 달라진다는 게 잡스 발언의 취지다.

이에 대해 발머는 이렇게 반박했다. "PC는 현재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미래에도 PC를 많이 사용할 것이다. '맥 트럭'이란 말이 나온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윈도 PC는 트럭처럼 되지 않고 계속 번창할 것이다. 아이패드 같은 특수한 디바이스는 쓸모없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맥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은 사라질 수 있지만 자사 윈도를 탑재한 PC는 계속 번창할 것이란 얘기다.

바로 이 시점에 포리스터 리서치가 '2015년 미국 PC시장 전망'이란 보고서를 냈다. 요지는 이렇다. 태블릿을 PC로 분류한다면 PC는 2015년까지 계속 번창할 것이다. PC 형태별 점유율은 많이 달라진다. 태블릿이 점유율을 높이면서 시장을 잠식할 것이다. 노트북이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하게 된다. 데스크톱은 점유율이 떨어지는데 게임용과 입체(3D)용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포리스터 보고서에 따르면 태블릿의 점유율(판매대수 기준)은 올해는 6%에 불과하지만 2012년에는 18%,2015년에는 23%가 된다. 넷북은 올해 18%에서 내년 이후 2015년까지 17%를 유지한다. 노트북도 마찬가지.태블릿의 잠식에도 불구하고 올해 44%에서 2015년에는 42%로 약간 떨어진다. 데스크톱은 2008년까지만 해도 노트북과 똑같은 45%였는데 올해 32%,2015년 18%로 뚝 떨어진다.

포리스터 전망대로 된다면 태블릿은 2012년에는 넷북을,2013년에는 데스크톱을 추월하며 '포스트 PC' 주력 모델로 자리를 잡는다. 과연 그렇게 될까. 애플에 이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HP 델 에이서 등도 일제히 태블릿을 개발하고 있고 삼성전자 LG전자 삼보컴퓨터 등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것만 보면 태블릿이 대세가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삼성 LG 삼보 등의 PC사업 담당자들은 포리스터의 전망을 수긍하지 않는 편이다. 아이패드 발매를 계기로 태블릿이 PC 시장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넷북을 추월하고 데스크톱을 추월하는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우명구 삼보컴퓨터 연구소장은 "태블릿이 이슈가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PC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소장은 "PC는 저작도구(저작용)이고 태블릿은 뷰어(감상용)"라며 "태블릿에서 구동할 콘텐츠는 PC로 생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병환 LG전자 부장은 "태블릿이 큰 폭으로 성장하겠지만 넷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태블릿은 콘텐츠 소비용,일반 PC는 콘텐츠 생산용이어서 각기 다른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8,9월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한 7인치 태블릿(갤럭시탭)을 내놓고,LG는 윈도7을 탑재한 10.1인치 태블릿을 4분기쯤 발매한다. 삼보는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10인치 태블릿을 개발 중이다.

이에 따라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국내에서도 태블릿 바람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