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지곡면 시목리 지리산 자락의 봉곡마을에서 태어난 박종호 대봉엘에스 회장(65)은 매일 새벽과 저녁에 소를 몰고 나가 꼴을 먹이고 이십리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 농사일이 너무 힘들었던 박 회장은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주경야독했다. 박 회장은 서울대 제약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동신제약에 입사,어린시절 농사를 짓지 않겠다던 꿈을 이뤘다. 다시 10년 뒤 박 회장은 화장품을 생산하는 유씨엘과 광어양식을 하는 비봉수산,사료생산 업체인 대봉엘에프 등을 계열사로 둔 기업가로 변신했다.

첫 직장인 동신제약에서 개발을 담당하던 박 회장은 대학 선배의 요청으로 1974년 국내 첫 샴프 린스 개발업체인 한진화학에서 한 해 동안 관리책임을 맡았다. 이때 화장품 사업 전반에 대해 배우고 이듬해 다시 동신제약에 재입사해 화장품 사업을 제안한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회장은 결국 1980년 사표를 내고 부천 임대공장에서 비봉파인을 출범시키고 화장품 사업에 나선다.

회사 설립 1년 뒤 내놓은 첫 제품은 파마 때 머리카락을 굳게 하는 제2제 파마약.당시 이 제품은 전량 일본에서 수입됐다. 박 회장은 "당시 매일 100여개 화장품 회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영업해 매월 400만개 넘게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듬해 가을 생산설비의 파이프가 터지는 사고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매출도 끊겨 문닫을 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2년 파마 때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해주는 제1제 파마약을 국산화하면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현재 25억원 규모인 국내 제1제 파마약 시장에서 80%(20억원)를 점유하고 있다.

박 회장은 파마약으로 돈을 벌자 의약품(혈액 · 백신제제 등) 및 화장품(미백 · 자외선차단 · 유기농화장품 등) 원료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존 비봉파인 공장만으로는 주문물량을 댈 수 없게 되자 박 회장은 1986년 부천에 부지 660㎡ 연건평 600㎡ 규모의 공장을 신축하고 대봉엘에스를 설립했다.

박 회장은 "당시 소규모 공장 두 곳에서 생산물량을 공급했지만 감당할 수가 없어 70억원을 들여 인천 남동공단에 부지(6600㎡)를 마련하고 공장(연건평 9900㎡)을 신축해 1996년 이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동공단으로 이전하면서 대봉엘에스는 화장품 · 의약품 원료와 식품첨가물을 전문으로 생산하고 비봉파인(2006년 유씨엘로 변경)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화장품을 생산하는 등 전문화했다"고 덧붙였다. 유씨엘(대표 이지원 · 박 회장 며느리)은 국내 50여개 화장품 회사와 베트남 중국 대만 등에 OEM방식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올해 200억원의 매출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인천 남동공단에 공장을 지으면서 대출받은 30억원이 경영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거래은행은 "은행이 부도나게 생겼다며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압박해온 것.박 회장은 해외 거래업체인 독일 브르노북과 일본 요시다케미칼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회사가 아무런 담보없이 신용으로 돈을 보내준 것.박 회장은 "이 돈으로 은행대출을 상환할 수 있었고 몇 년 뒤 두 회사에 빚도 갚았다"며 "그 때 이후 회사신용은 더 견고해졌다"고 소개했다.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자 박 회장은 2000년 초 연세대 의대에 다니던 아들 박진오 대표(39)를 불러 가업승계를 주문한다. 박 대표는 아버지 뜻을 따라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 병원 대신 회사를 택했다. 어린 시절 꿈꿨던 의사의 길을 접은 것.박 회장은 "영업현장을 알아야 한다"며 박 대표에게 영업부터 맡겼다. 박 회장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최고 제품만 만들면 팔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며 "최고경영자는 영업력이 있어야 해 영업부터 가르쳤다"고 털어놨다.

박 대표는 수도권과 중부권 일대에 있는 거래처 7~8곳을 매일 방문했다. 한 달간 자동차 주행거리만 6000~7000㎞가 될 정도였다. 박 대표가 가업을 물려받은 2003년 96억원이던 매출은 매년 20%씩 신장,지난해 290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330억원이 목표다. 박 대표는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개발을 강화하는 한편 마케팅을 확대해 나갔다. 또 거래처는 국내 및 다국적기업을 포함해 모두 400여곳으로 늘었고 일본과 베트남에도 연간 90만달러 상당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박 회장이 1989년 제주도 서귀포에 세운 연간 400t의 광어를 양식하는 비봉수산(연매출 60억원 상당) 인근에 45억원을 들여 어류전용 사료공장을 지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사료는 어분(魚粉)으로 만들기 때문에 물에 떠 썩지 않는 데다 소화가 잘된다고 한다. 올해부터 연간 350~400t을 생산해 연매출 1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박 대표는 "현재 400여종의 화장품 · 의약품 · 식품첨가물 원료를 생산하는데 매주 이틀은 밤 9시 너머까지 야근을 해야만 납기를 맞출 정도"라며 "설비 증설과 수출대상국가 확대는 물론 연구개발을 통해 의약품 및 화장품 원료 수를 늘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