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주제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서민'이었다. "경제 지표는 좋아지고 있지만 서민들은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물가가 서민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경기회복에 대해 전문가들과 서민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차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연달아 주문했다. 회의가 끝나고 오전 11시 과천 청사에서 열린 경제부처 장관 합동 기자회견에서도 화두는 역시 서민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민의 체감경기가 개선되도록 하는 데 최우선의 정책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정책과제 40%가 친(親)서민

정부가 이날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서민 지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 패배 이후 '친서민 · 중도실용' 노선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관가 주변의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에서 진 근본적 이유를 놓고 심각히 고민했다"며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데 정작 서민 · 중소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어 등을 돌렸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하반기 세부과제 106개 중 40개가 서민 지원 대책이다. 일용직의 근로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을 8%에서 6%로 낮춰주고 저소득층 대상 '희망키움통장' 가입자 폭을 확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용직 근로소득세율 인하는 247만명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서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내용도 강화한다. 종전 경증질환 위주로 맞춰진 건강보험 제도를 고쳐 환자 부담이 큰 중증질환 중심으로 보완한다. 만성 질환자와 병원을 1 대 1로 연결하는 '단골의사제'도 전국으로 확대 실시한다. 부모의 취업으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12개월 미만의 영아를 둔 가정을 찾아가는 돌보미 서비스가 다음 달부터 본격 추진된다.

◆개혁 과제는 뒷전으로

정책 방향이 친서민에 맞춰지다 보니 정부 출범 초기에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각종 개혁과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서비스산업 및 공기업 선진화,노동시장 개혁 등이 대표적이다. 서비스산업 선진화의 핵심 과제로 정부가 추진해오던 투자개방형 영리 의료법인의 경우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작년 말 '2010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영리 의료법인 도입 관련,한 페이지를 할애해 올해 주요 과제로 추진키로 한 것과는 딴판이다.

각종 노사관계 선진화 약속도 사라졌다.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노사간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 올해 중 도입키로 했던 '임금협약 유효기간 합리화'는 이번 정책방향에서 빠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어려움이 큰 서민을 지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나치게 인기를 만회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지다 보면 장기적으로 재정부담을 키워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며 "재정확대 기조를 정상화한다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구전략 본격화

정부는 이번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거시기조를 출구전략 쪽으로 선회했다. 종전에는 '본격적인 출구전략은 시기상조''확장적 거시기조 유지'를 반복했으나 이번에는 '거시기조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통화정책(금리)을 제외하고 재정과 금융정책에 관한한 출구전략의 본격적인 가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재정의 경우 하반기에는 집행을 서두르지 않고 분기별로 균등하게 가져갈 방침이다. 하반기 집행예정액이 108조원인 만큼 분기당 54조원가량이 투입된다. 상반기 163조원에 비하면 재정의 힘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 이후 취했던 각종 한시대책도 정상화된다. 희망근로사업은 8월로 종료되며 중소기업 신용보증 확대 조치도 원칙적으로 하반기에 중단된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