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재고가 급증하면서 철근과 고철 값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계속된 건설경기 불황에다 부실 건설사 퇴출 방침까지 겹치며 수요가 얼어붙은 데 따른 것이다.

◆부실 건설사 퇴출…철근 재고 급증

수도권의 한 대형 철근 유통업체는 24일 골프장 건설업체와 철근 800t(외경 10㎜ SD400 기준)을 t당 72만원에 공급키로 계약했다. 제강업체의 공장도가격인 t당 80만1000원에 비해 8만원 이상 낮은 수준이다.

철근 값은 지난달 10일 올 들어 최고가인 80만원 선까지 오른 뒤 지난달 말 75만원대로 떨어졌다. 이달 들어선 소강 상태였으나 은행들이 20여개 건설사를 구조조정할 것이란 소식에 이번 주엔 다시 급락했다. 유통사들이 건설사와의 거래를 꺼린 데다 건설사도 퇴출 발표를 앞두고 구매를 자제하면서 재고가 급증한 탓이다.

현재 현대제철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 7대 제강사의 철근 재고는 지난달 말보다 10만t 이상 늘어난 40만t 중반대로 알려지고 있다. 제강사들은 지난달 재고가 적정 수준인 30만t을 넘어서자 이달 일부 감산에 들어간 상태에서 재고가 급증하자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유통사인 서울철강(경기 화성시)의 박준배 이사는 "재고가 많은 유통사들이 건설사 부도설로 불안감이 커지자 월말 유동성 확보를 위해 물건을 저가에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모 철근 유통업체 사장은 "현재같은 가격에선 역마진이 발생한다"며 "제강사들이 월말 결산 때 할인율을 적용해 t당 75만~76만원에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내달 철근 값이 반등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퇴출설로 분위기가 위축됐었는데 옥석이 가려지고 나면 건설사들이 움직일 것"이라며 "다음 달부터 제강사들이 공장 보수에 들어가고 위안화 절상에 따른 중국산 수입도 줄어들 것으로 보여 수급이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료인 고철 값도 뚝뚝


철근의 원료인 철스크랩(고철) 가격도 동반 하락세다. 현대제철은 지난 17일에 이어 24일에도 철스크랩 구매가격을 t당 1만원 인하했다. 현대제철의 구매가는 최상급 고철인 생철 기준 t당 43만5000원으로 이달 들어 세 번째 떨어졌다.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철근 재고가 쌓이는 데다 고철 재고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제강사 관계자는 "현재 추가 구매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고 여유가 있어 철스크랩을 많이 구매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해외 고철 값도 경기 악화 우려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원자재 정보업체 코리아PDS에 따르면 미국 동부 철스크랩의 현물가는 지난 4월 말 롱톤(LT)당 375.8달러에서 지난 17일 319.8달러로 14.9% 하락했다. 도쿄 현물가도 5월 초의 t당 3만2500엔에서 지난 18일 2만4000엔으로 26.1% 떨어졌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유럽발 위기로 철스크랩의 최대 구매처인 중국과 터키가 구매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철스크랩 업체들이 가격 하락 전에 재고 털기에 나선 점도 하락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인천 부평의 한 철스크랩 업체의 창고는 거의 비어 있는 상태다. 이 업체 관계자는 "재고가 많을 땐 3000t 이상 쌓아놓지만 지금은 채 1000t도 안 된다"고 전했다.

김현석/심성미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