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에 100억원이 넘는 초고가 그림이 잇달아 탄생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 유럽 중국 중동 등의 '큰손'애호가들이 미술시장에 복귀해 희귀 작품을 경쟁적으로 매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22~23일(현지시간) 런던에서 가진 인상주의 및 근대 화가 작품 경매에서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에드와르 마네,앙리 마티스,앙드레 드랭,빈센트 반 고흐,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10점이 100억~616억원에 낙찰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페르난데스 데 소토의 초상'은 무려 616억원(3476만파운드 · 수수료 포함)에 팔렸다. 피카소가 국제 미술시장에서 '황제주'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클림트의 '리아 뭉크 3세의 초상'은 자신의 최고가인 334억원(1880만파운드)에 팔렸다. 마티스의 누드화(118억원),고흐의 '생 폴 병원의 공원'(159억원) 등도 고가에 팔렸다.
마네의 대표작 '팔레트를 든 자화상'(1878~1879년작)은 396억원(2244만파운드)에 낙찰됐고 그의 정물화'모란'도 100억원대를 훌쩍 넘었다. 마티스의 '체스를 즐기는 오달리스크'(1180만파운드),프랑스 화가 앙드레 드랭의 유화 '코리우르의 나무들'(1628만파운드)은 추정가보다 높은 200억원대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또 리투아니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생 수틴의 작품 '하인'(788만파운드)을 비롯해 피에르 보나르의 '점심,라디오'(620만파운드),마티스의 '벌거벗은 장미 연구'(586만파운드)도 100억원 이상에 팔렸다.
◆'슈퍼 리치'들의 왕성한 식욕=국제 경매시장에서 미술품들이 이처럼 초고가에 팔리는 것은 미국,중국,러시아,중동 등의 새로운 '슈퍼 리치'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근 ·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매수 주문을 집중 쏟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정서와 코드가 맞는 작품들에 거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런던 소더비 관계자는 "인상주의 및 근대화가 경매에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 14개국의 '큰손'컬렉터들이 거장들의 작품을 사들이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며 "미술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줄잇는 최고가 경쟁=그동안 경매시장에서 100억원 이상에 거래된 작품은 200~300여점으로 추산된다. 피카소의 경우 100억원이 넘는 초고가 작품이 75점이나 된다. 피카소는 2004년 뉴욕 소더비에서 '파이프를 든 소년'(1905년 작)으로 1억달러의 심리적 장벽을 깬 이래,지난달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1932년 연인 마리 테레즈를 모델로 그린 '누드-녹색 나뭇잎,상반신'이 무려 1180억원(1억648만달러)에 팔리며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조각 작품으로는 2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030억원(1억430만달러)에 팔린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 I'이 최고가 기록을 갖고 있고,지난 14일 크리스티 파리 경매에서 모딜리아니의 조각 '여인의 두상'은 추정가보다 10배나 높은 630억원(4320만유로)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중국 미술품도 최고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린 폴리 경매에서는 북송(北宋)대의 시인 · 서예가 황팅젠(黃庭堅)의 글씨 '지주명(砥柱銘)'이 770억원(4억3680만위안)에 팔려 아시아 미술품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달 베이징 자더의 춘계 경매에서는 장다첸(張大千)의 1968년 작 '애흔호'(愛痕湖)가 171억5000만원(1억80만위안)에 낙찰돼 중국 근 · 현대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했다. 현대 미술 작가로는 영국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1976년 작 '트립틱'이 2008년 런던에서 당시 환율로 900억원(8630만달러)에 낙찰돼 영국 미술의 위력을 보여줬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