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4일 한밤중,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에 폭탄을 설치하던 국군이 빨치산에게 기습을 당한다. 추격에 나선 국군 소위 태호(윤계상)는 다음 날 자신과 결혼하기로 한 수연(김하늘)이 빨치산들과 연관돼 있음을 알게 된다. 분노에 찬 태호는 불타는 건물 속에 그녀를 내버려둔다. 그러나 옛 연인 장우(소지섭)가 수연을 살려낸다. 어느새 25일 새벽이 밝아오고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한다. 세 남녀의 운명은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MBC가 23일 첫 방송한 수목드라마 '로드 넘버원'(연출 이장수 · 김진민,극본 한지훈)은 삼각 관계 러브 스토리를 통해 6 · 25의 비극을 그려낸다. 민초들의 삶과 사랑은 참혹한 전쟁으로 여지없이 찢겨진다. 수연과 장우는 애초 주종 관계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지만 입대했던 장우의 전사통지서가 날아들면서 운명이 엇갈리고 만다.

드라마는 이처럼 전쟁의 와중에서 가족과 동료를 잃어버린 사람들,사랑하는 연인을 찾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고통과 분투를 포착한다. 사실 수연과 태호도 이념이 다른 게 아니라 서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을 뿐이다.

연적 관계로 출발한 장우와 태호도 전쟁을 거듭할수록 뜨거운 우정을 나누게 된다. 소지섭 김하늘 윤계상뿐만 아니라 최민수와 손창민까지 가세한 호화 캐스팅이 돋보인다. 130억원을 투입해 총 20부작으로 사전 제작한 대작 드라마다.

6 · 25전쟁 60주년을 맞아 대형 전쟁 드라마 두 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MBC의 '로드 넘버원'과 KBS1TV의 주말 드라마 '전우'(토 · 일요일 오후 9시40분)가 그것.

첫 2회를 내보낸 이들은 반공 드라마라기보다 반전 드라마로 꾸려갈 예정이다. 둘 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민초들의 아픔과 희생을 그려낸다. 전쟁으로 잃어버린 가족과 전우,헤어져야만 하는 연인들의 슬픈 운명이 핵심이다. 기술 발달로 과거 전쟁극보다 영상이 뛰어나다.

16부작에 편당 4억원씩 총 80억원을 투입한 '전우'(연출 김상휘 · 송현욱,극본 이은상 · 김필진)는 시청자들을 한국전쟁의 한복판으로 끌고 간다. 거대한 폭파 장면이나 시가전 등도 생생하게 묘사한다. 10분간의 총격전을 5일 동안 찍었을 만큼 촬영에 공을 들였다.

'전우'는 1970년대 방영된 동명 드라마의 리메이크 버전.반공에 초점을 뒀던 원작과 달리 지옥 같은 전쟁 속에서 휴머니즘을 비춰낸다. 전쟁 중에 감당해야 하는 한계 상황과 그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병사들의 모습도 조명한다.

중공군의 기습으로 국군이 철수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추위가 엄습해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죽는다. 북한군과 유엔군을 가리지 않는다. 무의미한 죽음,부조리한 죽음을 초래하는 게 전쟁이란 메시지다. 전쟁은 또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되고 그를 붙잡아 죽여야만 하는 비극적인 상황도 전개된다. 고지탈환 같은 영웅적 전과나 남녀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9명의 분대원 행적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게 목표다.

김형일 PD는 "전쟁이 얼마나 모순적인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다"며 "이제는 반공보다는 반전과 평화를 말할 때"라고 말했다. 최수종 이덕화 이태란이 주연했고 김뢰하 임원희 김명수 등 베테랑과 이승효 류상욱 안영준 등 젊은 연기자들이 조화를 이뤘다.

극장가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 '60년 전,사선에서'가 24일 개봉됐다. 1950~1953년 국방부 정훈국이 제작한 원작 '전장의 진격'을 디지털로 복원한 뒤 참전 용사 33명의 증언을 삽입한 작품.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워 남한을 침공하고 국군은 부산까지 퇴각한다. 북한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국군은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전세는 뒤바뀐다.

3년간의 전쟁 상황을 당시 화면으로 보여주는 게 묘미다. 포탄에 맞아 뼈가 다 드러난 시체,전선의 급박함을 드러내는 군인들의 표정 등이 생생하게 포착돼 있다. 당시 상황을 회고하는 노병들의 증언도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