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한국 길목에서] EU의 톨레랑스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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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국 서로 도와주며 새로운 국가 건설
우리도 다문화사회 차이 인정하고 화합할 때
우리도 다문화사회 차이 인정하고 화합할 때
요즘 유럽연합(EU) 국가들 간에 유행하는 화두는 프랑스 말로 톨레랑스다. 영어로 톨러런스(tolerance)인 이 단어는 우리말로 관용,너그러움,참을성을 뜻한다.
EU는 민족과 역사 그리고 언어도 다른 27개국이 서로 같은 화폐를 쓰면서 사람과 문화 이동이 활발한,사실상 하나의 나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잘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이 섞여 있어 갈등이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공동기금 조성과 집행을 통해 상호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찾아낸 공존을 위한 지혜가 바로 톨레랑스다. 톨레랑스는 차이점을 받아들이면서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화합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EU 각 국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며,프랑스만 해도 치즈는 고장마다 300개가 넘는다. 이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화합의 길을 찾는 것이 톨레랑스다.
언제나 술에 만취해 있는 아일랜드인,자랑할 만한 음식이 없는 영국인,무뚝뚝한 독일인,구두쇠 네덜란드인,자랑만 늘어놓는 프랑스인,질서의식이 낮은 이탈리아인을 톨레랑스적 표현으로 바꿔보면 이렇다. 언제나 맑은 정신의 아일랜드인,항상 맛있는 음식을 차리는 영국인,유머러스한 독일인,호탕하고 넉넉한 네덜란드인,겸손한 프랑스인,질서정연한 이탈리아인이라는 패러디가 우리를 미소짓게 만든다.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대략 93만명이다. 결혼이민자와 한국 국적 취득 외국인 19만명까지 합치면 약 112만명의 다른 민족이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인 것이다. 매년 10만명씩 외국인 거주자가 늘고 있고,다문화 가정 수와 해당 가정의 자녀 수 또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 동북아에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 시간 비행거리 안에 15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중국에는 한국 유학생이 6만3000명,한국에는 중국 유학생이 6만7000명에 이른다. 외국인 근로자도 58만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톨레랑스 사회를 열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에 작고한 경제학자 폴 새뮤엘슨 교수는 한국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심각한 종교적 갈등이 없다는 사실을 꼽았다. 기독교와 유교적 가치가 공존하는 상황,즉 '한국적 톨레랑스'의 가능성을 언급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단일민족이란 순혈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과 이질감의 표현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남이 잘되고,다른 지역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네 정서는 크게 바뀐 게 없다. 모든 것이 같아야만 마음이 편하다. 산술적 평등주의는 여전히 팽배하며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관용의 폭이 그만큼 작다는 방증이다.
모든 갈등은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남을 이해하고 갈등관계에서 한걸음 물러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톨레랑스의 의미를 되새길 때다.
그간 우리는 옆도 보지 않고 너무 빨리 달려왔다. 이제 한 템포 늦춰 좌우를 돌아보며,관용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선진국 문턱에 서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화라는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 속에 있다. 이로 인해 지역 간,계층 간,세대 간 갈등관계를 악화시킬 뇌관이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되돌아보면 역사적으로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로마제국의 뿌리에는 다문화를 수용하는 톨레랑스가 있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간 갈등의 역사를 넘어선 EU 톨레랑스에서 '한국적 톨레랑스'의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최상철 지역발전委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
한국경제·우리은행 공동기획
EU는 민족과 역사 그리고 언어도 다른 27개국이 서로 같은 화폐를 쓰면서 사람과 문화 이동이 활발한,사실상 하나의 나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잘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이 섞여 있어 갈등이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공동기금 조성과 집행을 통해 상호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찾아낸 공존을 위한 지혜가 바로 톨레랑스다. 톨레랑스는 차이점을 받아들이면서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화합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EU 각 국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며,프랑스만 해도 치즈는 고장마다 300개가 넘는다. 이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화합의 길을 찾는 것이 톨레랑스다.
언제나 술에 만취해 있는 아일랜드인,자랑할 만한 음식이 없는 영국인,무뚝뚝한 독일인,구두쇠 네덜란드인,자랑만 늘어놓는 프랑스인,질서의식이 낮은 이탈리아인을 톨레랑스적 표현으로 바꿔보면 이렇다. 언제나 맑은 정신의 아일랜드인,항상 맛있는 음식을 차리는 영국인,유머러스한 독일인,호탕하고 넉넉한 네덜란드인,겸손한 프랑스인,질서정연한 이탈리아인이라는 패러디가 우리를 미소짓게 만든다.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대략 93만명이다. 결혼이민자와 한국 국적 취득 외국인 19만명까지 합치면 약 112만명의 다른 민족이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인 것이다. 매년 10만명씩 외국인 거주자가 늘고 있고,다문화 가정 수와 해당 가정의 자녀 수 또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 동북아에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 시간 비행거리 안에 15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중국에는 한국 유학생이 6만3000명,한국에는 중국 유학생이 6만7000명에 이른다. 외국인 근로자도 58만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톨레랑스 사회를 열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에 작고한 경제학자 폴 새뮤엘슨 교수는 한국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심각한 종교적 갈등이 없다는 사실을 꼽았다. 기독교와 유교적 가치가 공존하는 상황,즉 '한국적 톨레랑스'의 가능성을 언급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단일민족이란 순혈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과 이질감의 표현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남이 잘되고,다른 지역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네 정서는 크게 바뀐 게 없다. 모든 것이 같아야만 마음이 편하다. 산술적 평등주의는 여전히 팽배하며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관용의 폭이 그만큼 작다는 방증이다.
모든 갈등은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남을 이해하고 갈등관계에서 한걸음 물러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톨레랑스의 의미를 되새길 때다.
그간 우리는 옆도 보지 않고 너무 빨리 달려왔다. 이제 한 템포 늦춰 좌우를 돌아보며,관용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선진국 문턱에 서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화라는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 속에 있다. 이로 인해 지역 간,계층 간,세대 간 갈등관계를 악화시킬 뇌관이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되돌아보면 역사적으로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로마제국의 뿌리에는 다문화를 수용하는 톨레랑스가 있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간 갈등의 역사를 넘어선 EU 톨레랑스에서 '한국적 톨레랑스'의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최상철 지역발전委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
한국경제·우리은행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