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둔덕의 해송숲에 난 탐방로가 조붓하니 자연스럽다. 탐방로가의 잎 넓은 털머위는 깊은 산길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이런 저런 나무들에서도 예쁘게 다듬느라 손을 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석등 옆 수련이 가득 덮인 연못의 흰뺨검둥오리 가족 역시 일부러 놔 키우는 게 아니라고 한다.

태안군 천리포해수욕장 옆의 천리포수목원은 오로지 나무를 위한 수목원이다. 식물보호를 위해 지난 40여년간 연구목적으로만 사람을 들이다가,지난해 봄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했다. 가까운 원북면 신두리 해안사구와 함께 생태탐방 여행코스를 짜기에 알맞다.

◆나무를 위한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다. 귀화한 미국인 고 민병갈 원장(1921~2002)이 땀과 정성으로 일군 곳이다. 1945년 미군장교로 우리나라에 온 민 원장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던 1962년 해송 몇 그루뿐인 이곳 민둥산 부지를 매입,1970년부터 수목원 조성을 시작했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의 보고로 잘 알려져 있다. 61㏊의 부지에 식재된 식물은 1만3290여종으로 국립수목원보다 훨씬 많다.

탐방로를 따르며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다. 연못가의 커다란 '닛사'가 눈길을 끈다. 가지가 땅을 향해 바닥까지 처져 있는 나무다. 홍보담당인 최수진씨는 "밖에서는 들여다보이지 않는 공간이 생겨 연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나무"라며 웃는다.

블루베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나무다. 민 원장은 블루베리 열매로 잼을 만들어 먹고 술을 담가 마시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그래서 새들이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씌워 각별히 보호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세상을 떠난 해 블루베리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해안 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나무로 된 전망데크가 나온다. 바로 앞에 낭새섬이 보인다.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질 때 걸어들어갈 수 있다. 큼직한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바캉스 기분을 낼 수 있다.

◆한국의 사하라사막

신두리사구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다. 천연기념물 431호다. 1만5000년에 걸친 해류와 바람의 작용에 의해 형성됐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모래언덕같지 않다. 바다 쪽에는 갯그렁이란 풀로 뒤덮여 있다. 안쪽에는 소나무며 아카시아가 숲을 이루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앞장서 예전의 사막 같은 사구 복원에 나서고 있다. 지속가능한 생태탐방 여행지로 만들기 위해서다. 권오수 신두3리 번영회 총무(45)는 "풀이 듬성듬성 있는 예전의 사구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소를 투입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구 안으로 들어가 독특한 생태를 살펴볼 수 있다. 큰솔창,작은솔창에는 솔숲이 제법 울창하다. 솔숲 너머의 사구는 띠로 덮여 있다. 새벽녘이라면 쏜살같이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곳곳에 핀 해당화가 예쁘고,여기저기 갯멧꽃도 피어 있다. 초종용이란 식물은 특이하다. 사철쑥 뿌리에 붙어 사는 기생식물로 중풍 치료나 강정제로 쓰인다고 한다.

두옹습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신두리해안사구의 남쪽에 있는 사구배후습지다. 바다에서 직선거리로 400m 떨어져 있다. 습지보호조약인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습지 중 가장 작다. 등에 금빛 줄무늬가 있는 황금개구리가 발견돼 유명해졌다.

태안=글 · 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7월9일부터 사흘간 신두리해안사구에서 생태축제가 열린다. 신두리 사구탐방,내가 만든 생태지도,신두리 생태그림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모래찜질,모래썰매타기도 즐길 수 있다.

신두리해수욕장에 바다여행(041-675-1366) 등 펜션이 많다. 천리포수목원(041-672-9982)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원북면 중앙통의 원풍식당(041-672-5057)은 박속밀국낙지탕으로 유명하다. 태안등기소 앞에 있는 토담집(041-674-4561)은 꽃게장백반과 우럭젓국을 잘한다. 소원면 의항리 2구 개목항 부둣가의 푸른수산횟집(041-674-9096)은 그날 잡은 횟감을 올린다. 태안군청 문화관광과(041)670-2544,//taea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