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ART] 풍자한 듯…복제한 듯…팝아트 거장 정물화에 홀린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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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언갤러리 '리히텐슈타인' 展
'행복한 눈물'로 알려진 작가…사물구조 평면적으로 형상화
'팝아트 정물화' 새 장르 개척
'행복한 눈물'로 알려진 작가…사물구조 평면적으로 형상화
'팝아트 정물화' 새 장르 개척
뉴욕 맨해튼 서남쪽에 있는 첼시는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상업화랑들이기에 세계적인 '큰손'컬렉터들이 몰린다. 네트워크도 워낙 좋아 웬만한 미술관보다 더 따끈따끈한 전시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곳의 최대 상업화랑 가고시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정물화'도 그런 전시다.
앤디 워홀과 함께 1960년대 미국 팝아트의 주역이었던 리히텐슈타인(1923~1997년)의 전시는 세계 곳곳에서 수도 없이 열렸지만,그의 정물화만 모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달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정물을 소재로 한 페인팅 70여점이 걸렸다. 넓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새로운 작가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가고시언갤러리는 2008년 리히텐슈타인의 여인 그림만 모아 전시를 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유명했던 '행복한 눈물'(2002년 뉴욕 크리스티 낙찰가격 715만9500달러)이 국내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미국으로 돌아왔던 것도 바로 그 전시였다. 리히텐슈타인은 원래 만화 같은 그림,특히 여자가 들어간 만화 그림으로 유명하다. 팝아트가 한창 유행하던 1964년에 그린 '행복한 눈물'은 리히텐슈타인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최고 작가들은 늘 변화를 추구했다. 1972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1960년대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물화'라는 새 장르를 파고 들었다. 그런데 가만,'정물화'는 서양미술에서 이미 닳고 닳은,그래서 시시하게 여겨지기까지 하는 장르인데 뭐가 새로울까? 바로 그걸 밝혀주는 것이기에 이 전시가 흥미롭다.
리히텐슈타인은 17세기 유럽의 전통적 정물화부터 20세기 초반의 입체파와 야수파,순수파 등 과거 거장들의 작품에서 소재와 스타일을 빌렸다. 거기에 '나는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점을 뚜렷이 집어넣었다.
그는 특히 마티스를 좋아했는데,여인의 누드와 꽃병이 있고 그 뒤로 화려한 벽지가 보이는 '조각이 있는 정물'(1974년 작)을 보면 '어? 저거 마티스 그림 보고 그린 거 아냐?'라고 할 정도다.
사과,포도,술병을 즐겨 그린 것을 보면 17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정물화를 떠올리게 되지만 각지게 그려진 사물,저질 인쇄 만화책처럼 조악한 색깔,곳곳에 찍힌 '리히텐슈타인표' 굵은 인쇄 망점을 통해 그는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찍어놓는다.
입체파 화가들이 썼던 사물을 쪼개고 다시 붙이는 기법 역시 리히텐슈타인 정물화의 특징이다. 사물 형태가 단순하면서 물체끼리 서로 면을 넘나드는 것은 입체파와 순수파 화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요소다. 결국 리히텐슈타인은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화가들처럼 사물의 구조를 뜯어보고 그것을 평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프린스턴대학의 존 윌머다잉 교수는 이번 전시에 맞춰 쓴 도록 에세이에서 "전통적으로 정물화는 작가들이 사물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룬 장르였으며,리히텐슈타인이 정물화를 좋아했던 제일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정물을 선,색,모양이 조화를 이루는 좋은 예로 보았다"고 평했다.
거장의 이름만 앞세우는 전시는 더 이상 의미도 재미도 없다. 이 전시는 세계적인 거장을 택하되 그의 감춰진 면을 집중 해부하기에 익숙함과 새로움이 함께 느껴진다. 여인과 만화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직후에 새로운 스타일로 과감하게 옮겨 가고,거기에서 '정물화'라는 옛 장르를 아주 현대적인 장르로 다시 태어나게 한 거장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최근 뉴욕의 미술경매에 리히텐슈타인의 정물화가 자주 나오고,가고시언갤러리가 세계 최대 메이저 상업화랑인 것을 생각하면,미술시장에서 컬렉터들의 취향이 리히텐슈타인의 여인 그림을 넘어 정물화까지 뻗친 것도 엿볼 수 있다.
뉴욕=이규현 미술칼럼니스트
앤디 워홀과 함께 1960년대 미국 팝아트의 주역이었던 리히텐슈타인(1923~1997년)의 전시는 세계 곳곳에서 수도 없이 열렸지만,그의 정물화만 모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달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정물을 소재로 한 페인팅 70여점이 걸렸다. 넓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새로운 작가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가고시언갤러리는 2008년 리히텐슈타인의 여인 그림만 모아 전시를 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유명했던 '행복한 눈물'(2002년 뉴욕 크리스티 낙찰가격 715만9500달러)이 국내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미국으로 돌아왔던 것도 바로 그 전시였다. 리히텐슈타인은 원래 만화 같은 그림,특히 여자가 들어간 만화 그림으로 유명하다. 팝아트가 한창 유행하던 1964년에 그린 '행복한 눈물'은 리히텐슈타인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최고 작가들은 늘 변화를 추구했다. 1972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1960년대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물화'라는 새 장르를 파고 들었다. 그런데 가만,'정물화'는 서양미술에서 이미 닳고 닳은,그래서 시시하게 여겨지기까지 하는 장르인데 뭐가 새로울까? 바로 그걸 밝혀주는 것이기에 이 전시가 흥미롭다.
리히텐슈타인은 17세기 유럽의 전통적 정물화부터 20세기 초반의 입체파와 야수파,순수파 등 과거 거장들의 작품에서 소재와 스타일을 빌렸다. 거기에 '나는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점을 뚜렷이 집어넣었다.
그는 특히 마티스를 좋아했는데,여인의 누드와 꽃병이 있고 그 뒤로 화려한 벽지가 보이는 '조각이 있는 정물'(1974년 작)을 보면 '어? 저거 마티스 그림 보고 그린 거 아냐?'라고 할 정도다.
사과,포도,술병을 즐겨 그린 것을 보면 17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정물화를 떠올리게 되지만 각지게 그려진 사물,저질 인쇄 만화책처럼 조악한 색깔,곳곳에 찍힌 '리히텐슈타인표' 굵은 인쇄 망점을 통해 그는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찍어놓는다.
입체파 화가들이 썼던 사물을 쪼개고 다시 붙이는 기법 역시 리히텐슈타인 정물화의 특징이다. 사물 형태가 단순하면서 물체끼리 서로 면을 넘나드는 것은 입체파와 순수파 화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요소다. 결국 리히텐슈타인은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화가들처럼 사물의 구조를 뜯어보고 그것을 평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프린스턴대학의 존 윌머다잉 교수는 이번 전시에 맞춰 쓴 도록 에세이에서 "전통적으로 정물화는 작가들이 사물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룬 장르였으며,리히텐슈타인이 정물화를 좋아했던 제일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정물을 선,색,모양이 조화를 이루는 좋은 예로 보았다"고 평했다.
거장의 이름만 앞세우는 전시는 더 이상 의미도 재미도 없다. 이 전시는 세계적인 거장을 택하되 그의 감춰진 면을 집중 해부하기에 익숙함과 새로움이 함께 느껴진다. 여인과 만화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직후에 새로운 스타일로 과감하게 옮겨 가고,거기에서 '정물화'라는 옛 장르를 아주 현대적인 장르로 다시 태어나게 한 거장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최근 뉴욕의 미술경매에 리히텐슈타인의 정물화가 자주 나오고,가고시언갤러리가 세계 최대 메이저 상업화랑인 것을 생각하면,미술시장에서 컬렉터들의 취향이 리히텐슈타인의 여인 그림을 넘어 정물화까지 뻗친 것도 엿볼 수 있다.
뉴욕=이규현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