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시대의 산물이다. 베스트셀러는 더 그렇다. 88서울올림픽 이듬해 출간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가 크게 히트치고,외환위기 이후 변화와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누가 내 치즈를 먹었을까'와 '마시멜로 이야기'가 대박을 터뜨린 게 대표적인 예다.

올여름 서점가엔 정의론(正義論) 바람이 분다는 소식이다. 마이클 샌델(57)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가 출간 한 달 만에 5만부 이상 팔렸다는 것이다. 인문서적은 5000부만 나가도 성공이라는데 두꺼운(404쪽) 정치철학책이 이렇게 떴으니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변의 첫째 이유론 27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는 등 저자의 화려한 이력이 꼽힌다. 하버드대 인기 강좌를 모은 내용이란 점도 한몫했다고 하고, 출간 무렵 천안함 사건과 스폰서 검사 파문 · 지방선거 등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사건이 이어진 것도 관심을 끈 요인으로 여겨진다.

어쨌거나 이 책이 불티난다는 건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독자 70%가 20~50대 남성이란 걸 보면 다들 각종 현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힘든 모양이다.

책은 정의와 불의,평등과 불평등은 물론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 가운데 어느 쪽이 우선돼야 하는지를 놓고 누구도 간단히 결론짓기 힘든 사례들을 제시한다. 여럿이 살자고 한 사람을 희생시킨 일은 처벌돼야 하느냐 아니냐,적인 줄 모르고 동정심을 발휘한 일이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일은 어떻게 평가돼야 하느냐 등.

샌댈은 그러나 다양한 접근을 통한 합의점 모색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단답형식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정의론의 또 다른 대가인 존 롤스(1921~2002)와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롤스가 집단 행복의 극대화와 개인 자유의 최대 보장 가운데 후자 쪽으로 기울었다면 그는 중간,곧 공동체 미덕을 장려하면서 '좋은 삶'을 추구하는 쪽에 좀 더 무게를 둔다.

객관성은 신화일 뿐이란 주장이 나오는 시대에 정의의 정의(定義)는 어렵다. 세금을 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의견은 같기 힘들다. 그러나 합리성에 근거한 개인의 이성적 판단은 간 데 없이 내편 네편을 갈라 집단의 주장만 내세우는 세상은 끔찍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돌풍이 흑백논리 아닌 사고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