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 2012년까지 세계 5대 콘텐츠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발표했다. 국내 매출 100조원,수출 78억달러,세계 시장 점유율을 5%로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목표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달성하기 어렵다. 2004년 이후 2007년까지 문화콘텐츠 산업 규모는 연평균 5.4%,수출은 18.4% 성장했다. 이 수치를 적용하면 2007년 58조6000억원인 문화콘텐츠 산업 매출이 2012년 76조1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목표에 24조원 못 미치는 액수다. 수출도 2007년 15억6000만달러에서 2012년 36억3000만달러에 머물 전망이다. 목표의 절반에 불과하다.

케이블방송 시장은 구조적인 모순에 빠져 있다. 진입 장벽이 낮아 영세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역량이 부족한 사업자에 대한 퇴출 규정은 미비하다. 이 때문에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 케이블채널이 범람하면서 자체 제작 비율이 높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자리마저 빼앗고 있다. 2001년 통합방송법 시행으로 케이블 사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한 후 나타난 부작용이다.

방송법에 따르면 PP 등록은 자본금 5억원 이상과 종합편집실,조정실 등 기초 제작시설만 갖추면 된다. 편성 계획과 프로그램 수급 계획 등에 대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지만 별도로 심사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재무 상황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자국 콘텐츠 의무 규정이 있지만 제작 시장 활성화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PP는 국산 프로그램을 분기마다 전체 방송시간의 40% 이상 편성해야 한다.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 등은 분야별로 한 국가(외국)의 프로그램을 일정 비율 이내로 방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오히려 국내 지상파 프로그램을 여러 채널들이 돌려가며 방영하는 폐해를 낳았다.

또 콘텐츠를 거의 제작하지 않는 PP들이 제작 비율이 높은 PP들을 밀어내고 모기업 복수유선방송사업자(MSO)의 전송망에 실리는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가령 티브로드는 계열 PP인 '스크린' '패션엔' '뷰' 채널을 송출하기 위해 자체 제작 비율이 높은 CJ와 온미디어 계열 채널 수를 크게 줄였다. C&M도 계열 PP인 '드라맥스' '코미디TV' 등을 비슷한 과정으로 늘렸다. '스크린' '패션엔' '뷰' 등은 자체 제작 실적이 거의 없는 채널들이며 CJ와 온미디어는 케이블업체 중 자체 제작 비율이 가장 높다. 이런 상황은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케이블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체 제작 의무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가령 프랑스는 전체 매출의 16% 이상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콘텐츠 제작에 관해 월 1회 정기적으로 평가하며 기준 미달 시 등록을 취소한다. 미국의 미디어 산업 경쟁력은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 해외 시장을 잠식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케이블채널의 한 임원은 "자체 제작은 지상파 중심의 제작 시스템을 다원화하기 위해서라도 필수 요소"라며 "PP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이 회복된다"고 지적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