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양설비업체 "한국으로"
27일 업계에 따르면 NOV는 이번에 인수한 호창기계를 통해 '데릭(derrick)'이라는 철골 구조물을 생산하기로 했다. 시추용 파이프를 지탱하는 장비로 지금까진 NOV가 유럽 자회사에서 제작했다. NOV는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전 세계에 자회사 152개,종업원 3만6000명을 두고 있는 해양설비 분야 대형 그룹이다. 아시아권에 자회사를 두기는 처음이다.
NOV는 그동안 국내 조선업체에 드릴링 시스템을 독점 공급해 왔다. 기원강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장(부사장)이 "드릴십을 애써 만들어도 이익의 3분의 1을 NOV에 줘야한다. 시추 장비를 국산화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술 독점력이 막강하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한국의 조선 3사가 2005년부터 작년까지 34척,총 170억달러에 달하는 드릴십을 수주했지만 이 가운데 34억달러를 NOV로부터 핵심 부품인 드릴링 시스템(척당 1억달러)을 사들이는 데 썼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NOV는 유럽,미국에 있는 자회사들의 수직 계열화를 통해 세계 시추 장비 설계와 제작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며 "기술 유출을 철저히 막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글로벌 해양 플랜트를 한국 조선사들이 싹쓸이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NOV에 이어 세계적 해양설비 업체들의 진출이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의 핵심 장비인 TMS(해저로부터 원유 및 가스를 뽑아 선상의 정제 설비로 전달하며,정제된 가스를 육상 설비로 이송하는 시설물)를 독점 생산하는 SBM도 한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문근 삼성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 상무는 "드릴십,FPSO 등 해양 설비를 만들 수 있는 곳이 한국 조선소뿐이기 때문에 해외 해양 설비 부품업체들은 앞으로도 한국으로 몰려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껏 전 세계에서 발주된 200만배럴 이상 초대형 FPSO 12척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7척,대우조선해양이 3척을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같은 기간 200만배럴 이하 중소형 FPSO를 무려 14척이나 가져왔다.
◆높은 기술 장벽,국산화엔 한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해양 설비 부품업체들의 한국 진출이 부품 국산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쏟고 있다. 박태현 지경부 자동차조선과 사무관은 "해양 설비 부품 국산화율이 선종별로 10~3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드릴십,FPSO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설계는 대부분 해외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컨테이너,벌크선 등 조선산업의 부품 국산화율(설계 포함)이 95%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입 의존도가 높은 셈이다.
지경부가 작년 4월 '해양플랜트 경쟁력 강화 사업'을 시작하며 총 5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다. 조선기자재 업체 관계자는 "NOV의 한국 진출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물꼬는 일단 텄다"면서도 "하지만 핵심 기술에 접근하기엔 장벽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최병국 조선기자재협회 전무는 "선주들이 드릴십이나 FPSO를 한국 조선소에 주문할 때 기자재를 어디서 조달해야 할지도 패키지로 묶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기자재 업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