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호주에서 첫 여성 총리가 나왔다. '이민 온 광부의 딸' 줄리아 길러드의 신데렐라 같은 부상은 세계인의 주목을 끌 만한 뉴스였다. 케빈 러드 전 총리는 하룻밤 새 부총리였던 49세의 길러드에게 밀려났다.

호주 노동당을 이끌어온 러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지율 70%대의 신망받는 정치인이었다. 길러드를 정치적으로 키워온 것도 그였다. 그러나 올 들어 세금 신설 카드를 꺼낸 게 화근이었다. 철광석 · 석탄에 '천연자원 이득세'를 물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호주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원이 그에겐 유혹적인 과세 대상이었을까. 개발이익의 40%까지를 징수해 사회복지 분야에 넣겠다고 했다. 물론 기존의 법인세 외 추가 부과다. "천연자원은 국부(國富)이니 개발이익을 국민 모두가 나눠가져야 한다"는 구호는 일면 달콤했다.

충분한 여론 수렴없는 정책구호에 호주인들은 놀랐다. 광산업계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달 들어 시드니에서 대규모 반대집회도 열렸다. "정부가 공산주의로 변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호주 3위의 광산업체 회장은 그렇게 성토했다. 나라 재산을 더 개발해 국민 다수에게 혜택을 주자는 이 '멋진 구호'에 지지율은 40%대로 추락했다. 왜 그랬을까. BHP빌리턴 리오틴토 같은 자국의 간판 자원기업이 해외로 광산개발의 방향을 돌리려 하고,투자계획을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업체들도 늘어나는 상황이 일반 국민들 눈에도 위태로워 보였던 것이다. 세금 문제는 그만큼 폭발력이 크다.

최근 출범한 일본의 간 나오토 내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간 내각은 장기불황 타개책의 하나로 5%인 소비세를 10%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개혁한다'는 명분도 분명했다. 그러나 지지율은 즉각 9%포인트 급락했다. 간 총리는 "2,3년 뒤에나 생각해보겠다는 의미"라며 부랴부랴 물러서야 했다.

1993년 캐나다 보수당의 실패 사례는 세금 신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멀루니 정권은 169석에서 총선 뒤 단 2석짜리로 완전히 망가졌다. '연방소비세 신설' 공약 때문이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후 보수당은 재집권에 13년이 걸렸다.

중세의 절대왕조까지 넘어뜨린 게 세금이다.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도 세금 때문이었다. 그만큼 신중하게,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이 증세(增稅)요,세금 신설이다. 여론을 수렴해가며,대상자를 설득하고,반대파에 거듭 설명해야 한다. 근래 유럽선거에서도 그랬다. 지난 3월 프랑스 지방선거 때 여당의 참패에도 세금 신설 문제가 있었고,독일 중간선거에서 기민 · 자민당 연정이 패한 것도 세금 신설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이달 들어 벨기에와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각각 세금 운용과 재정 긴축이 쟁점이었다. 4월 헝가리에서 제1야당 피데스가 이긴 것도 감세공약 때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쓸 데는 많은데 재정수입은 뻔한 게 현대국가다. 그러나 공공부문 군살빼기,지출 줄이기가 선행되는 게 순서다. 굳이 세금을 손대자면 세율을 낮춰 경제가 돌게 해 자연스레 세금이 더 많이 걷히도록 방향을 잡는 게 맞다. 그런 다음 탈루소득이 없도록 행정역량을 높여나가는 게 중요하다. 현대판 글로벌 경제전쟁의 핵심은 기업하기에 좋은지 여부다. 자원세로 한방에 날아간 러드의 사례를 보며 국내 정치권도 세금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허원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