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기아차…'20년연속 파업'에 막히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스포티지R,중형 세단 K5 등을 연달아 히트 상품 반열에 올리며 1998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된 뒤 사상 최대 점유율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기아자동차가 '파업'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가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65.7%의 찬성으로 가결되면서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기아차가 파업에 들어갈 경우 20년 연속 파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 정면 충돌

기아차 노사관계가 경색된 것은 지난 4월30일 노조 측이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를 임 · 단협 요구조건에 끼워 넣으면서부터다. 기아차 노조는 다음 달 이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골자로 한 개정 노사관계법 시행으로 총 181명인 전임자 수를 19명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기존 유급 전임자 숫자 유지와 함께 노조 신규 채용자의 임금 지급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법이 정하고 있는 것이며 임 · 단협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적 입장을 지키며 협상을 거부해 왔다.

기아차 노조의 임 · 단협 요구안에는 전임자 임금 지급 외에도 사측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금전적인 보상을 명시한 임금협상 요구안을 통해서는 임금을 8% 올려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생계비 부족을 감안,기본급과 수당을 더한 통상 월급여의 300% 이상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덧붙었다. 의료비 지원을 확대하고 조합원 배우자도 사측으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차량을 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사측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내용도 수두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노조는 인사원칙과 제도를 바꿀 때 노조와 합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 · 기아차 계열사나 부품업체 근로자들을 기아차에 배치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에서다. 해외 공장이나 관계사로부터 엔진,변속기 등의 핵심 부품을 조달하는 물량 교류 역시 노사 간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파업 돌입 가능성은

잘나가는 기아차…'20년연속 파업'에 막히나
쟁의 찬반투표가 가결됐다고 해서 바로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기아차 노조는 일정 기간 양측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후 파업 돌입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아차 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가려면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우선 파업 자체가 불법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4일 기아차 노조가 제기한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전임자 임금 지급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쟁의조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파업은 불법으로 간주한다.

조합 내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소하리,화성,광주 등 3개 공장 생산자관리협의회와 기노련,일노회 등 기아차 현장조직들은 노조 집행부의 투쟁 방침에 반대하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파업으로 놓칠 수 없다는 게 파업 반대 이유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논란이 일반 조합원과 관계없는 정치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파업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금속노조가 기아차 지부를 선봉으로 삼아 대대적인 노동법 백지화 투장에 나서기로 한 만큼 노사 간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금속노조는 최근 서울 양재동 현대 · 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갖는 등 적극적으로 기아차 지부를 지원하고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