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도시국가로 출발해 이탈리아 반도와 지중해 전체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잘 짜인 도로망과 고도로 훈련된 군대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고,2세기에는 세계의 절반과 가장 문명화된 사람들을 지배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395년 동 · 서로 제국이 분리된 이후 서로마는 급격히 쇠락해 476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1764년 10월15일,유럽 여행에 나선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이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 시내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의 폐허에 앉아서 탁발 수도사들이 저녁 기도를 올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그는 이 도시의 쇠망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이렇게 잉태됐다. 그러나 기번이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였고,첫 권이 나오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으며,집필 12년 만에야 모두 6권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영어,프랑스어,라틴어에 능통했고 그리스어,스페인어,히브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기번이 역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수집해 연구,분석,고증한 끝에 집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 6권으로 완역된 《로마제국 쇠망사》는 '세계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로마제국의 쇠퇴 과정을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그려낸다.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서 시작해 서로마 제국의 멸망,동로마 제국의 창건,신성로마 제국 건국,튀르크의 침입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약 1400년간의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를 위해 기번은 서기 100년께부터 당대까지 서방의 역사는 물론 영어로 번역된 동양사 관련 서적도 모두 섭렵했다. 동로마 제국은 물론 이른바 '야만국'과 그 구성원 등 서방에 영향을 미친 동양적 요소까지 놓치지 않음으로써 통찰력과 균형 잡힌 시각을 갖췄던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 여러 차례 소개됐으나 이번 완역본은 역사가 J B 버리의 1995년 편집판을 번역하면서 4700여 주석 가운데 본문 이해에 지장이 없는 350여개를 제외하고 모두 번역한 것이 장점이다. 기번이 고쳐 쓰기를 거듭해 완성했다는 구어체 문장,이슬람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을 만큼 공정하고도 통찰력 있는 서술도 주목할 만하다.

권력과 배반,명예,전쟁,사랑,인물과 사건,문화,예술,종교 등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인간사의 모든 것을 망라한다. 기번은 로마 황제의 변을 통해 권력의 덧없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대들은 군주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머리 위에는 언제나 검이 매달려 있다네.군주는 자신의 근위병들마저 두려워하며,동료도 믿지 못한다네.(중략) 이렇게 나를 제위에 올려놓았으니 그대들은 나에게 근심 가득한 일생과 때이른 죽음이라는 운명을 안겨준 셈이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