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동차 업체들이 배워야 할 '선구자'로 여겨졌다. BP는 오랫동안 '세븐 시스터즈(세계 7대 석유메이저)'로 불리며 군림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차량 리콜 사태로 치명타를 입고 소비자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BP는 멕시코만에서 대형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연일 갈등을 빚는 중이다. 글로벌 기업들도 돌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리스크 예측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지만 파급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데 수십억년 전부터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것이 있다. 바로 자연이다. 생명체가 탄생한 약 35억년 전부터 지금껏 자연은 수많은 지각 변동과 운석 충돌,기후 변화에 효과적인 대응 체계를 스스로 형성했다.

자연계의 위기 대응 특성은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자율(自律)이다. 위협에 직면했을 때,위협을 감지한 개체(요소)가 중앙 통제를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인체의 자율신경계가 눈 깜빡임이나 재채기를 한다든가,동물의 보호색이 피부의 감광세포가 빛을 느끼는 즉시 발현하는 것이 한 예다. 10여명의 소규모 팀 3000여개가 독립채산제로 움직이는 교세라의 '아메바 경영'은 이런 자율성을 본뜬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모듈화(modularity)다. 자연의 많은 생명체는 내부 구조를 구획별로 나눠 유기체 일부가 손상돼도 전체는 존속할 수 있게 하고 있다. 2001년 엔론사 파산 후 미국 회계법인들에 대한 감사와 소송이 늘자 각 법인들은 과제별로 독립된 팀이나 자회사를 구성해 과제를 수행했다. 어찌보면 '도마뱀 꼬리 자르기'이지만 감사와 소송 등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세 번째 특징은 가변성(可變性)이다. 호주 바다에 사는 흉내문어는 포식자가 접근하면 각 포식자의 천적으로 변신해 포식자를 퇴치한다. 아귀가 접근하면 다리 6개를 감추고 바다뱀 흉내를,고등어가 접근하면 다리 끝을 뻣뻣이 세운 채 유영하며 라이언피시 흉내를 낸다. 사업 분야를 바꾸거나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집중해 성공을 거둔 IBM이나 노키아는 '변화하는 기업'의 상징이다.

네 번째 특징은 잉여(剩與)다. 자연은 언제나 '백업(back-up)'을 준비한다. 거미가 매달리기 위해 만드는 견인줄은 2중이다. 줄 하나로도 충분하지만,만일을 대비해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다. 9 · 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대부분 기업이 업무 마비에 빠졌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다른 지역에 백업시스템을 둬 정상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마지막 특징은 협동이다. 야생 얼룩말 무리는 사자가 접근하면 머리를 안으로,엉덩이를 뒤로 한 채 원형으로 무리를 지어 강력한 방어 대오를 형성한다. 오면 바로 걷어차 버리겠다는 뜻이다. 남대문 시장의 중소 가죽제품 업체들이 대기업 브랜드와 경쟁하려 '가파치'라는 공동 브랜드를 만든 것이나,서울지역 소규모 탁주 제조업체들이 '서울장수막걸리'로 연합한 것,스위스 시계제조업자들이 뭉쳐 '스와치(SWATCH)'를 만든 것이 이런 예다.

자연의 리스크 관리 특징에서 알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이 살아 남으려면 환경의 불확실성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생존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위험을 예측하려 하기보다 위험에 대비해 조직 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지나친 효율 일변도의 경영이 조직의 장기 생존에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수십억년의 생존 투쟁 경험이 체화된 지혜의 보고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혜안을 자연에서 얻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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