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키우자] (2) 해외 공룡 미디어 '호시탐탐'…60개 케이블 채널 국내시장 잠식
월트디즈니가 최근 한국에서 SK텔레콤(SKT)과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디즈니는 내년 초부터 2개의 패밀리 채널을 SKT와 공동 운영하기로 하고 49 대 51의 비율로 출자했다. 그동안 해외에서 100% 지분을 소유했던 디즈니가 2대 주주로 콘텐츠를 송출하는 것은 처음이다.

두 채널은 해외 재송신채널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현재 영업 중이다. 해외 재송신채널은 자막 처리를 할 수 없어 광고영업도 불가능하다. 합작사의 경우 자막을 입히고 국내 광고영업을 할 수 있지만 채널 경영권은 가질 수 없다. 또 일정 분량의 한국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방영해야 한다. 디즈니가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합작사를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계는 크게 두 가지 시각으로 보고 있다. 우선 디즈니가 SKT와 손잡고 캐릭터 사업을 전개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SKT의 유 · 무선망을 통해 디즈니 캐릭터를 판매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판매나 광고 수익만으로는 디즈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가 비준된 이후의 포석이란 시각도 있다. FTA 비준 3년 후부터 외국 기업은 한국에서 케이블 채널 지분을 100%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한 · 미 FTA가 통과되면 한국시장은 글로벌 미디어의 전장으로 변할 것이며 이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합작 법인을 세웠다는 얘기다. 물론 이 경우에도 캐릭터 사업은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약 60개 외국 미디어 진입

[글로벌 미디어 키우자] (2) 해외 공룡 미디어 '호시탐탐'…60개 케이블 채널 국내시장 잠식
디즈니처럼 조인트벤처(합작 법인) 형태로 한국에 진입한 글로벌 미디어는 이미 20개에 육박한다. 뉴스코퍼레이션은 CJ미디어와 다큐멘터리 중심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티브로드와도 폭스채널,FX,폭스라이프 등 3개 채널을 가동 중이다. 폭스라이프가 대다수 국가에서 '여성 채널'인 데 비해 한국에서는 '시트콤'으로 현지화한 게 이채롭다. 또 타임워너는 중앙일보와 카툰네트워크채널,큐TV를 운영하고 있다. NBC는 SBS와 손잡고 CNBC와 E채널을 각각 운영 중이다.

단순히 재송신채널로 승인받은 외국 채널도 40개에 달한다. CNN 등 미국 채널이 19개로 절반에 육박한다. 유로스포츠 등 프랑스 채널이 6개,BBC 등 영국 채널이 5개,대만 일본 필리핀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의 채널이 1개씩이다. 이들은 지사를 설립하거나 에이전트 계약을 통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전송료를 주고 프로그램을 송출한다. CNN처럼 대형 브랜드채널은 SO로부터 돈을 받기도 한다.

◆한국 방송 제도는 후진적

그러나 HBO 시네맥스 워너TV 등 미국에서 '인기 짱'인 채널들은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BBC나 디스커버리채널도 기본 채널만 들어왔을 뿐 사이언스나 홈&헬스,베이비,히스토리 등 특화 채널은 진입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채널 소유권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에서 조인트벤처로 성공한 모델도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해외 미디어 사업자들은 한국시장에 대해 "수신료가 낮고 광고 시장도 작다"고 불평한다. 글로벌 미디어들은 6 대 4의 광고와 수신료 수입을 지향하지만 한국에서는 8 대 2 혹은 9 대 1이다.

한 외국계 채널 관계자는 "한국의 방송 제도는 후진적"이라며 "해외 채널사업자가 재송신을 승인받는 데 선진국에서는 1~2주 걸리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90일이나 걸린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1500만세대를 거느린 한국 케이블방송 시장은 중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 3대 미디어 시장으로 꼽힌다. 일본은 수익성이 높고,중국은 인구가 많은 게 장점이다. 얼리어댑터가 많은 한국은 첨단 기술의 테스트마켓으로 받아들여진다.

◆전 세계 네트워크 발판으로 영업

글로벌 미디어들이 한국에 진입하려는 이유는 '규모의 경제'와 '표준화'라는 핵심 역량 때문이다. 가령 어린이채널 니켈로디언은 미국 영국 호주 등 149개 지역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할 수 있다. 콘텐츠 제작에서 표준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세계 110개국에 매일 15초짜리 광고를 1년간 내보내는 조건으로 기업들로부터 100억원을 받는다. 글로벌 미디어 광고는 이처럼 전 세계 단위로 이뤄진다.

글로벌 미디어들은 일단 채널을 통해 진출한 뒤 문화적 장벽이 낮아지고 시청자의 충성도가 높아지기를 기다린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인수 · 합병이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시장을 개척했다. 시장성을 평가하고 리스크를 이겨낼 방안을 마련한 뒤 프로그램 판매부터 기업 운영까지 단계적으로 글로벌화를 진행했다.

◆케이블방송 콘텐츠 사업이 성장 주도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바이아콤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 글로벌 미디어로 도약했다. 2008년 타임워너는 통신 사업 위축으로 영업손실 160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사업 매출은 2006년 117억달러,2007년 159억달러,2008년 172억달러로 계속 성장했다. 바이아콤도 같은 해 매출 146억달러,영업이익 25억달러를 기록했다.

뉴스코퍼레이션의 해외 사업 비중은 절반에 육박할 정도다. 6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2008년 매출 330억달러,영업이익 54억달러를 올렸다. 영화나 출판 등은 정체돼 있지만 케이블 프로그램 사업 매출은 2006년 33억달러에서 2008년 49억달러로 급증했다. 세 그룹의 공통점은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사업이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도 2008년 경영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다양한 매체를 포괄할 수 있고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콘텐츠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