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구조조정 넘어 선진화로] "수요 맞춰 짓자" 회사 내부서도 안먹혀 … 워크아웃 '再修'
수도권에서 건설업을 하는 중견 주택전문건설업체 A사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아픔을 겪었다. 직원 절반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실시한데다 2000년대 초반 분양시장이 급격히 회복된 데 힘입어 회사는 정상화됐다. 이 회사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다시 워크아웃 신세가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장 상황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벌인 게 문제였다. 10년 전 뼈아픈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이 회사 B전무는 "2005년부터 사업을 확대하지 말자는 목소리를 냈지만 시장 상황을 낙관하는 다수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주택산업이 위기를 맞은 가장 큰 요인은 '천수답' 경영이다. 건설사나 은행이나 눈앞의 상황에 취해 미래를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정부도 마구잡이식 신도시개발과 급진적인 시장안정책 등을 통해 부동산 가격의 진폭을 확대시켰다.

◆천수답식 경영 벗어나야

부동산 수요는 '식당의 점심시간'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고 부동산 학계는 분석한다. 낮 12시가 되면 손님이 몰렸다가 오후 1시가 되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부동산 수요도 돈이 된다 싶으면 갑자기 들끓다가 분위기가 반전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진다는 것이다. 서후석 명지대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산업은 특성상 높은 차입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주택경기 변화에 큰 영향을 주는 정부정책과 경기 수급상황 등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그러나 변곡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체계적 ·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건설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사도 마찬가지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건설사 지급 보증에 의존해 마구잡이로 돈을 대준 게 사실이다.

정부는 건설사의 예측을 도와주기는커녕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주택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통계 자료가 없는 게 현실이다. 지역별 적정 공급량 · 인허가 물량 · 착공 물량 · 입주 물량 등 변곡점을 추론할 만한 기초 통계를 찾을 수 없다.

반면 정부는 가격 등락폭을 확대하는 정책들을 쏟아내 왔다. 김대중 정부에선 외환위기로 위축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거의 모든 부동산 규제를 풀어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지역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지방과 수도권의 수요가 없는 지역에 무더기로 택지지구를 지정했다.

◆위험 · 수익 공유 구조 만들어야


현재의 개발구조 하에선 주거시설 개발사업 위험을 건설사가 모두 떠안게 돼 있다. 형식적으론 시행사가 사업주체지만 금융사는 시공사 보증 없이 땅값과 건축비를 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경기 침체 때마다 건설사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이유다.

부동산 금융이 발달한 선진국에선 시행사 · 시공사 · 금융회사 등 3자가 위험과 수익을 공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부동산개발회사인 피데스개발의 김승배 사장은 "말뚝만 박으면 팔리는 시대가 지난 만큼 사업성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과 사업성을 보고 투자할 수 있는 부동산금융을 육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시장 트렌드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인구감소 · 고령화 · 1~2인세대 증가 등으로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개발업체인 내외주건의 김신조 사장은 "소품종 ·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 소량생산 체제로,신도시 개발에서 도시 재생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며 "상황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곳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다양한 주거상품 공급을 가로막는 분양가 상한제,실물을 보지도 못한 채 수억원대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선분양제 등도 중장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