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이 또 국민 혈세를 집어삼켰다. 금융 감독 당국은 저축은행들이 보유한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을 처리하기 위해 2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2008년 말의 1조3000억원을 합하면 부실PF대출 처리에만 4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외환위기 당시의 지원금 8조5000억원,예금보험기금으로 지원한 4조4000억원까지 포함하면 수혈된 자금이 무려 17조원에 이른다. '돈먹는 하마'다.

저축은행 부실이 이 정도에서 수습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해 말 현재 부동산 PF대출(12조4942억원) 가운데 사업성이 양호한 '정상' 사업장은 3조3158억원,일부 어려움이 있는 '보통' 사업장은 5조2695억원,사업추진이 곤란한 '악화우려' 사업장은 3조9089억원을 각각 나타냈다. 2008년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 채권을 한 차례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반 사이 발생한 신규 부실이 4조원가량에 달한다. PF사업장들이 빠른 속도로 부실화되고 있고,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공적자금이 또 추가로 투입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사태가 초래된 것은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PF대출 영업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PF대출은 고금리에다 시공회사들이 보증까지 서주는 만큼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대출 규모가 커 영업실적 제고에 그만이었고 실제로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PF대출은 회사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재앙으로 변모했다. 건설사 보증이란 것도 믿을 게 못 됐다. 보증이 공식부채에 포함되지 않는 점을 이용해 건설사들이 능력 이상으로 보증을 남발해왔던 까닭이다. 그동안 PF대출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귀담아 듣지 않은 탓도 크다.

하지만 저축은행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작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예금자들에 대해 1인당 5000만원까지 지급을 보장해주는 예금자보호 제도가 그것이다. 저축은행들은 이 제도를 활용해 시중자금을 급속히 빨아들였다. 예금자 입장에서도 아무런 위험부담이 없으면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이는 저축은행의 수신고 변화를 살펴보면 한 눈에 드러난다. 1인당 5000만원 보호 제도가 시행되기 직전인 2000년 말 저축은행의 총 수신고는 18조원대였지만 지난해 말에는 72조원 선에 이르러 9년 만에 4배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18개 시중은행 수신고 증가율보다 2배나 빠른 속도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몰리다 보니 '푼 돈'에 불과한 서민금융보다는 덩치가 큰 부동산 PF대출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예금보호제도는 업계의 옥석가리기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예금자들은 거래하는 저축은행이 경영 상태가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자금운용 능력이 뛰어난 곳인지 열등한 곳인지 등을 굳이 따져야 할 이유가 없다. 설혹 금융사고가 생긴다 하더라도 5000만원 이하라면 예금회수에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경영상태가 악화된 곳을 자연도태시키는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예금보호 제도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예금보호를 전면 폐지하는 등의 조치는 저축은행뿐아니라 금융권 전체에 심각한 불안을 야기할 게 분명하므로 급진적 방법을 취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호금액의 단계적 축소 등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은 지금부터라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 특히 저축은행 등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곳은 보호금액을 낮게 책정하는 등 업태별로 차등화하는 방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예금자 입장에서도 높은 이자를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