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구조조정 넘어 선진화로] (3) "2000채 허가받아 한번에 지으라니"…수요맞춘 순차분양 허용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S사의 L 사장은 아파트 가격정보 앱을 개발하려다 최근 포기했다. 이 앱은 스마트폰에 실거래가가 뜨는 것으로 국토해양부의 실거래가 자료가 필수였다. 자료를 줄 수 있느냐고 요청하자 국토부는 "악용 소지가 있어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L 사장은 "어차피 국토부 사이트에 공개되는 자료인데 악용 소지가 있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기업 경영 여건은 광속으로 변하고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긴 안목으로 정책 수립해야

건설산업은 몇 년씩 공사를 지속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다. 사업계획 수립 때 찬찬히 따져볼 수 있는 기초 통계자료가 매우 중요한 이유다. 정부는 그러나 보유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정책 수립을 가늠할 만한 자료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한 시행사 대표는 "활용 가능한 토지,택지지구로 나올 수 있는 땅,허가 · 착공 · 준공된 주택규모 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무작정 지었다가 시장 침체로 미분양이 쌓이면 자금난으로 퇴출위기에 몰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도 자료 부족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공공공사에 2001년 도입한 최저가 낙찰제도 정책의 단견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많다. 이 제도는 건설사들의 저가 경쟁을 전제로 한다. 건설사들이 싸게라도 수주하는 것은 선급금(공사비의 30%가량)의 유혹 때문이다.

[건설산업, 구조조정 넘어 선진화로] (3) "2000채 허가받아 한번에 지으라니"…수요맞춘 순차분양 허용을
건설 경기가 나쁠수록 선급금의 유혹은 강력해진다. 장비와 인력을 놀릴 수 없으니 밑지는 가격에라도 따낼 수밖에 없다. 신용위험평가 B등급을 받은 중견건설사 임원은 "최저가 낙찰제 도입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주택사업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며 "공공공사와 주택사업에서 모두 압박 받고 있어 얼마나 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낙찰가를 낮추면서도 공사 품질까지 파악하는 최고가치 낙찰제의 장점을 도입하면 덤핑 수주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조언하고 있다.

◆대량 공급 마인드 바꿔라

주택보급을 늘리려고 아파트를 대량으로 찍어내던 주택 정책도 바꿀 때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2000채를 사업승인 받으면 2000채를 한꺼번에 분양해야 하는 제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며 "건설사 판단에 따라 단지를 나눠 순차적으로 분양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만 의존하는 부동산개발금융을 지분투자를 통한 사모펀드 등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들쭉날쭉 정책 자제해야

건설 · 주택 정책이 필요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투기억제를 이유로 2003년 3주택자에 이어 2005년 2주택자에게도 양도세를 중과했다. 각각 양도차익의 60%와 50%를 세금으로 내도록 했다. 이때부터 부동산 시장에는 '똘똘한 한 채'란 표현이 유행했다. 여러 채 있어봐야 세금을 내면 남는 게 없으니 서울 강남의 고가 중대형 한 채에 집중하라는 투자지침이었다. 건설사들이 최근 하락세를 주도하는 중대형을 경쟁적으로 지은 데엔 정책 변경에 따른 부작용도 한몫했다.

분양가 상한제도 마찬가지다. 2007년 말 전면 확대하자 건설사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분양을 앞당겼다. 당시 분양된 물량의 입주가 본격 시작된 올해 전국에는 빈 아파트가 계속 늘고 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잦은 정책 변경은 시장 왜곡을 초래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