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년 전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강남땅'은 한국 자본주의의 상징이에요. 옳다,그르다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중립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강남에 대한 꿈'은 어쩌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욕망'이 아닐까요. "

신작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펴냄)으로 2년 만에 돌아온 황석영씨(67)는 보다 속도감 있고 젊어진 듯했다. 트위터(@Hsokyong)로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황씨가 지난해 9월부터 8개월간 인터파크도서에 연재했던 탓일까.

《장길산》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충실한 묘사와 리듬감 있는 긴 문장이 아주 짧아졌다. 감정이 줄어든 대신 장면 전환은 빨라졌다.

《강남몽》은 황씨가 여러 차례 쓰고 싶다고 언급했던 '강남 형성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를 연상시키는 '대성백화점'이 무너진 날로부터 과거로 거슬러간다.

어린 시절 만주로 이주했다가 헌병대의 밀정으로 일했고,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산하 요원으로 일하며 권력과 돈을 좇은 김진(대성백화점 창업자),룸살롱과 카페 등 화류계를 거쳐 서른두 살에 김진의 '세컨드'가 된 박선녀 등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제3한강교(한남대교)' 건설을 앞두고 강남 개발에 뛰어들어 부를 축적한 부동산업자 심남수,북창동 · 무교동 일대부터 강남까지 휩쓰는 광주 충장로파의 전설적인 깡패 홍양태 등이 가세한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1960년대 말~1990년대 중반이지만 일제 치하의 만주와 해방 후 미군정,6 · 25전쟁과 군사 쿠데타 등 한국의 현대사를 망라한다.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이나 남로당 축출과 관련된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소령)의 일화,도시개발 계획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정치인의 모습 등 민감한 소재들이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당시 신문기사와 국내외 국립문서보관원 등이 공개한 '팩트'(사실)가 소설의 80%를 차지합니다. 그들의 고민과 인간적인 면모,일상적인 장면 등 20%의 소설적 요소를 가미했지요. 일종의 '다큐멘터리 소설'이라고 할까요. "

그러나 작가의 시선이 냉정한 것만은 아니다. 누구나 배 고팠던 시절, 급변하는 시대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회를 잡으려 몸부림쳤던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밑바탕에 깔았다.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는 중에 원경 스님(박헌영의 아들)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일제시대에 비행기 만드는 데 1만원을 냈던 국내 모 대기업 창업주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는데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 분이 독립운동하는데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줬다면서요. 한국현대사가 얼마나 복합적인지 몰라요. 우리가 척결 위주의 삶에 너무 익숙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