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을 전제로 한 한전식 임금피크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전 임금피크제 시행 전에)정부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 "(2월 초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개별 사업장의 노사 간 단체협상 내용을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영진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6월30일 임해종 재정부 공공정책국장)

공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일정 연령 이후부터 임금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제도) 도입과 관련,정부 입장이 4개월여 만에 180도 바뀌었다.

재정부는 30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공기업 현안을 논의했지만 핵심 쟁점인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는 안건에서 제외했다.

재정부는 당초 공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핑계로 정년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지침을 마련해 늦어도 6월 말까지 발표할 예정이었다. 한국전력이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7월부터 시행키로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의도에서다.

윤 장관은 올해 초 한전이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키로 하는 내용을 노사 단협을 통해 합의하자 "한전식 모델이 정답은 아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대 공기업인 한전이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다른 공기업들도 따라갈 것이고,이는 국가 당면과제인 청년실업 해소와 상충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재정부는 결국 한발 뒤로 물러섰다. 임 국장은 "노사 간 단협을 통해 합의한 것을 정부가 뒤엎으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한전식 정년 연장을 막는 가이드라인을 당분간 내놓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의 경우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할지 말지는 순전히 경영진의 판단에 맡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발뺌으로 한전 경영진은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게 됐다. 한전 경영진은 그동안 정부의 눈치를 보며 7월 임금피크제 시행을 위한 준비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정부의 발표를 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한전 관계자는 "7월부터 시행하려면 이미 내부 규정을 바꾸고 만 56세 이상인 직원들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야 하지만 이런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7월 시행은 사실상 물건너갔다"고 말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 발표 계획을 철회함에 따라 한전 경영진은 시행을 서두르든지,아니면 노조와의 재협상을 통해 시행을 철회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둘 다 상황이 만만치 않다. 예정대로 시행할 경우 정부의 공기업 및 기관장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하고,시행을 철회하면 노조로부터 역공을 당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한전 노조는 올해 7월 시행이 안 되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공기업 경영평가에 참여한 한 대학교수는 "정부가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에 대한 반발을 우려해 한전 경영진에 책임을 넘긴 거나 마찬가지"라며 "공기업 개혁의 핵심 과제로 지난 1년간 준비해 왔던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표준모델 발표를 사실상 철회한 것은 더 이상 개혁을 안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