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누가 그래? 비잔틴이 로마제국의 쇠락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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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비잔틴 제국 | 이노우에 고이치 지음 |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72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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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비잔틴제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천년 역사다. 비결은 위기에 대응하고 변해가는 것,곧 유연함이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를 줄타기하며 때론 당나라와도 손잡는 절묘한 변용술로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비잔틴제국은 동서문물을 끊임없이 융합하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역사에 길이 남았다.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역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비잔틴제국을 동로마제국으로 부르며 고대 로마의 쇠퇴 과정으로 봤다. 그러나 비잔틴제국 연구의 권위자인 이노우에 고이치 일본 오사카 시립대 교수는 《살아남은 로마,비잔틴제국》에서 기번의 주장을 갈피마다 뒤집어 놓는다.
유럽과 아시아,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경계라는 문명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비잔틴제국.표면적으로는 로마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웠지만 속은 실용주의로 꽉 차 있었다.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하기 위해 불멸의 대법전으로 통했던 로마법을 왜곡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또한 비잔틴의 황제들은 절대적 권위자였지만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유스티누스 1세(450?~527)는 돼지를 키우던 평민이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483~565)의 아내는 서커스단의 무용수였다. 혈통이나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던 것이다.
힘 빠진 로마제국이 동 · 서 로마로 분열한 다음,동로마로 쪼그라든 8세기 중반 비잔틴제국의 영토를 보라.바로 지워질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비잔틴은 11세기 초에 거뜬히 회생해 강대국으로 성장한다. 그 후 셀주크 투르크와 십자군 등에 번번이 침략당했으나 그들과 동화하고 융합하면서 13세기 후반까지 건재함을 과시했다.
14세기 중반에 모든 힘을 잃고서도 100여년을 존속한 후 1453년 오스만에 결국 백기를 들지만 이 과정에서 비잔틴제국은 변화와 혁신으로 끝없이 거듭났다. 476년 게르만에 의해 멸망한 서로마 제국보다도 1000년을 더 이어 온 비책은 바로 융통성이었던 것이다.
비잔틴제국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시기마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하게 타협했다. 현실에 현명하게 대처한 그들의 유연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역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비잔틴제국을 동로마제국으로 부르며 고대 로마의 쇠퇴 과정으로 봤다. 그러나 비잔틴제국 연구의 권위자인 이노우에 고이치 일본 오사카 시립대 교수는 《살아남은 로마,비잔틴제국》에서 기번의 주장을 갈피마다 뒤집어 놓는다.
유럽과 아시아,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경계라는 문명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비잔틴제국.표면적으로는 로마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웠지만 속은 실용주의로 꽉 차 있었다.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하기 위해 불멸의 대법전으로 통했던 로마법을 왜곡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또한 비잔틴의 황제들은 절대적 권위자였지만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유스티누스 1세(450?~527)는 돼지를 키우던 평민이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483~565)의 아내는 서커스단의 무용수였다. 혈통이나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던 것이다.
힘 빠진 로마제국이 동 · 서 로마로 분열한 다음,동로마로 쪼그라든 8세기 중반 비잔틴제국의 영토를 보라.바로 지워질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비잔틴은 11세기 초에 거뜬히 회생해 강대국으로 성장한다. 그 후 셀주크 투르크와 십자군 등에 번번이 침략당했으나 그들과 동화하고 융합하면서 13세기 후반까지 건재함을 과시했다.
14세기 중반에 모든 힘을 잃고서도 100여년을 존속한 후 1453년 오스만에 결국 백기를 들지만 이 과정에서 비잔틴제국은 변화와 혁신으로 끝없이 거듭났다. 476년 게르만에 의해 멸망한 서로마 제국보다도 1000년을 더 이어 온 비책은 바로 융통성이었던 것이다.
비잔틴제국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시기마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하게 타협했다. 현실에 현명하게 대처한 그들의 유연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