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동쪽만 존재하던 日 고대지도…불교, 서쪽을 일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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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의 탄생 | 오지 도시아키 지음 | 송태욱 옮김 | 알마 | 328쪽 | 1만6500원
바빌로니아·中 고대지도 등
실제보다는 그들의 세계관
16C 대항해시대 와서야 실측
바빌로니아·中 고대지도 등
실제보다는 그들의 세계관
16C 대항해시대 와서야 실측
영국박물관에 있는 고대 바빌로니아 점토판 지도는 현존 최고(最古)의 세계지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지도는 중앙의 원반과 그 바깥을 둘러싼 동심원의 띠,그리고 그 바깥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는 돌기 모양의 이등변삼각형으로 구성돼 있다. 중앙의 원반은 대지를,동심원의 띠는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환해(環海 ·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돌기 모양의 삼각형은 환해 저편에 있는 가상의 세계를 나타낸다. 원반 내부의 경험 세계는 신바빌로니아 왕국이고,원반 밖은 미지의 세계다.
환해를 나타낸 동심원의 띠에는 '쓴 물의 강'이라고 씌어 있다. 이는 '세계는 평평하고 대지와 해양으로 구성돼 있으며 원반 모양의 대지 바깥 둘레를 소금바다가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옛 지도에는 땅의 실제 모습에 앞서 세계관이 투영돼 있다. 현실 세계의 모양을 축소해 정확히 표현하는 것을 지도의 최대 역할로 삼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지도의 역사를 크게 보면 현대에 가까워지면서 지도에 담긴 이야기나 표현이 사상성 · 예술성에서 과학성 · 실용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世界圖)'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지도'로 바뀌어온 것이다.
《세계지도의 탄생》은 세계의 여러 문명권에서 만든 옛 지도를 꼼꼼히 비교,분석하며 이 같은 변천과정을 설명한다. 가령 일본 호류사에 소장된 일본 최고의 지도인 '오천축도(五天竺圖)'는 불교의 전래에 따른 세계관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본 열도의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동아시아 해역이 유일한 해외였고,한반도와 중국이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불교가 유입되면서 중국 저편에 부처가 태어난 천축이라는 나라,또 하나의 문명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일본열도의 해외 인식은 단숨에 확대됐다.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민족을 '오랑캐'로 보는 중국은 지도를 화이(華夷 · 중화민족과 주변 오랑캐) 사상에 근거해 그렸다. 세계 최초의 인쇄지도인 '고금화이구역총요도(古今華夷區域總要圖)가 대표적 사례다. 북쪽이 위에 배치되도록 지도의 방위 기준을 통일하기 전인데도 이 지도에는 북쪽을 위쪽으로 하고 있다. 이는 '천자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땅에 선다'는 중국 왕권사상의 방위관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2세기에 그려진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도 마찬가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이 믿는 대로 인도양을 육지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 지도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중국과 가깝게 그린 탓에 이를 믿고 탐험에 나선 콜럼버스 등은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 밖에도 오늘날 남아 있는 기독교 세계의 '헤리퍼드 세계지도',이슬람 세계의 '이드리시 세계지도' 등 각 문명과 문화를 대표하는 중세 세계도를 비교하며 각각의 특징과 상호 교류 및 변천 양상을 밝혀낸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도의 근대화가 대대적으로 추진된 것은 이른바 대항해 시대에 들어서였다. 이를 선도한 나라는 포르투갈이다.
대항해 시대를 이끈 포르투갈에서 1502년에 제작된 지도가 '칸티노 세계지도'다. 저자는 이를 세계도에서 세계지도로 옮겨가는 분기점이자 지도에 요구되는 사상성,예술성,과학성,실용성을 모두 갖춘 걸작으로 평가한다. 세로 105㎝,가로 200㎝의 도면에 당시 포르투갈이 파악하고 있던 세계를 그린 이 지도는 측량 또는 천측(天測)을 통해 경도 · 위도를 측정해 세계를 그리려고 시도한 최초의 지도다.
답사하지 못한 주변부는 제외하고 오로지 실측 가능한 것만 그렸으며,인도로 항해하기 위한 해도라는 점에서 실용적 목적도 뚜렷하다. 또한 포르투갈이 영유하고 있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지대를 채색하고 상품에 대한 해설도 풍부하게 담아 실용성을 더욱 높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상상을 평면에 구현한 옛 지도를 지금의 정확한 지도와 비교하는 것은 언뜻 무의미해 보인다. 하지만 세계지도의 변천사에서 인류 지성의 발달 과정과 문명교류사를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