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일러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소장)는 '강과 길의 철학자'라 하고,김지하 시인은 '발로 쓰는 민족사상가'라고 한다. 김용택 시인은 그를 '김정호 귀신이 씌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신정일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 국토를 걸어서 답사해온 신씨가 그동안 써온 인문기행의 완결판을 내놓았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교본 삼아 쓴 《신정일의 신택리지》 시리즈다. 8도를 지역별로 개관한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살고 싶은 곳》을 비롯해 《전라도》《경상도》를 한꺼번에 내놨고,올해 말까지 10권으로 완결할 예정이다.

저자는 시리즈의 총론 격인 《살고 싶은 곳》에서 '살 만한 곳(可居地)'의 네 가지 조건으로 지리,생리(生利),인심,산수를 꼽고,이를 기준으로 살 만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려낸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가거지'의 원리로 제시했던 그대로다. 이에 따르면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은 시냇가 근처다. 물이 있으면 들이 있고,들이 있으면 오곡이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강변마을을 꼽았고,마지막이 바닷가마을이다.

시냇가 마을로 이름난 곳은 예안과 안동,순흥,예천 등 태백산과 소백산 아래 지역을 주로 꼽는다. 예산의 도산,안동의 하회마을,임하댐 아래에 있는 의성 김씨 종택,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닭실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진안,금산,장수,무주 등 금강 상류 일대는 시내와 산세는 뛰어나지만 들이 넓지 않아 살이 팍팍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강가에서 살 만한 곳으로는 춘천 우둣벌,한강변의 여주,동창천변의 청도,삼가천변의 선병국 가옥 등을 꼽았다.

사대부들이 대를 이어 살았던 곳과 그들의 지적 활동 공간이었던 서원과 정자,전국의 이름난 명당도 소개한다. 저자는 "빌딩이 산의 높이를 넘어서고,강의 물길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산수와 지리는 우리 삶의 근간"이라며 "이 땅을 자연과 사람 모두가 더불어 사는 명당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