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국노조는 자존심도 없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3년 전쯤 프랑스 항공사인 에어프랑스 노조를 방문했을 때 노조 간부에게 들은 말은 지금껏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강경파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에 가입해 있는 이 간부는 "노조전임자 임금을 회사로부터 지원받느냐"는 질문에 대뜸 "노조 간부가 창녀냐"며 거친 어조로 반문했다. 전임자 임금은 당연히 노조재정에서 충당해야지,왜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느냐는 어투였다. 에어프랑스에서도 각종 노사공동위원회에 참여하는 전임자의 임금은 회사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상급노동단체 파견이나 순수한 노조활동을 하는 전임자 임금은 노조 스스로 해결한다. 영국 미국 독일 스웨덴 등 다른 선진국의 노동운동판에서도 노조활동을 하는 전임자의 임금은 노조기금에서 충당된다.
우리의 노동현장은 어떠한가. 1일부터 전임자 임금 지원을 제한하는 타임오프제도가 본격 시행됐는데 많은 노조들이 현재의 전임자 수 유지를 요구하면서 사용자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전임자 임금을 노조 스스로 해결하는 곳은 별로 없고 많은 노조들이 회사에서 전임자 임금을 주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기아차 노조는 개정 노조관계법에 따라 현행 181명인 전임자 수를 19명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노조는 현재 수준의 전임자 수를 유지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할 일이 없어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고심하는 '베짱이 전임자'가 넘쳐나는 데도 노조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대우조선 GM대우 등 그동안 노사관계가 원만했던 노조도 전임자 수 유지를 위해 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한술 더 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상급노동단체에 파견한 전임자의 임금까지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없다. 한때 자주적 독립적 노동운동을 외쳤던 기개는 찾기 힘들다. '한국 노동운동가들의 영혼은 죽었다'는 한 노조간부의 비판이 설득력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노동운동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사용자의 책임도 크다. 1987년 민주화바람을 타고 노조가 봇물처럼 설립됐을 때 사회적 분위기에 눌린 기업들은 노조의 요구가 없는데도 전임자 임금을 지급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결국 노조의 자긍심과 자주성을 몽땅 빼앗아 버리면서 한국의 노동운동을 왜곡시켜 버렸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다. 노조법에 명시된 전임자임금지급 금지는 법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타임오프제라는 희한한 제도로 변질됐다. 유급근로시간 인정 범위를 모호하게 명시해 애초부터 혼란의 소지를 자초했다. 더욱이 현장의 혼란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정부는 이를 최소화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뒷짐만 져 왔다.
물론 타임오프 취지에 맞게 전임자 수를 줄이는 노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새로운 노동운동을 주창하고 있는 오종쇄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이 새 노조법에 맞게 전임자 수를 감축하기로 했다. 55명인 전임자 수를 30명으로 줄이고 이 중 타임오프제 한도인 15명만 회사 지원을 받고 나머지 15명의 임금은 노조기금에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평소 강조해온 독립적,자주적인 노동운동을 행동으로 보여 준 모범사례다. 쌍용자동차 LG전자 노조 등에서도 타임오프제 한도를 지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용자에 기대려는 의타적인 노동운동이 대세를 이루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노조간부들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운동을 중시하는 날은 언제야 올까.
upyks@hankyung.com
우리의 노동현장은 어떠한가. 1일부터 전임자 임금 지원을 제한하는 타임오프제도가 본격 시행됐는데 많은 노조들이 현재의 전임자 수 유지를 요구하면서 사용자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전임자 임금을 노조 스스로 해결하는 곳은 별로 없고 많은 노조들이 회사에서 전임자 임금을 주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기아차 노조는 개정 노조관계법에 따라 현행 181명인 전임자 수를 19명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노조는 현재 수준의 전임자 수를 유지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할 일이 없어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고심하는 '베짱이 전임자'가 넘쳐나는 데도 노조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대우조선 GM대우 등 그동안 노사관계가 원만했던 노조도 전임자 수 유지를 위해 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한술 더 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상급노동단체에 파견한 전임자의 임금까지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없다. 한때 자주적 독립적 노동운동을 외쳤던 기개는 찾기 힘들다. '한국 노동운동가들의 영혼은 죽었다'는 한 노조간부의 비판이 설득력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노동운동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사용자의 책임도 크다. 1987년 민주화바람을 타고 노조가 봇물처럼 설립됐을 때 사회적 분위기에 눌린 기업들은 노조의 요구가 없는데도 전임자 임금을 지급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결국 노조의 자긍심과 자주성을 몽땅 빼앗아 버리면서 한국의 노동운동을 왜곡시켜 버렸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다. 노조법에 명시된 전임자임금지급 금지는 법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타임오프제라는 희한한 제도로 변질됐다. 유급근로시간 인정 범위를 모호하게 명시해 애초부터 혼란의 소지를 자초했다. 더욱이 현장의 혼란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정부는 이를 최소화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뒷짐만 져 왔다.
물론 타임오프 취지에 맞게 전임자 수를 줄이는 노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새로운 노동운동을 주창하고 있는 오종쇄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이 새 노조법에 맞게 전임자 수를 감축하기로 했다. 55명인 전임자 수를 30명으로 줄이고 이 중 타임오프제 한도인 15명만 회사 지원을 받고 나머지 15명의 임금은 노조기금에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평소 강조해온 독립적,자주적인 노동운동을 행동으로 보여 준 모범사례다. 쌍용자동차 LG전자 노조 등에서도 타임오프제 한도를 지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용자에 기대려는 의타적인 노동운동이 대세를 이루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노조간부들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운동을 중시하는 날은 언제야 올까.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