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워런 버핏이 닮은 점이 하나 있다면 둘 다 신문광이었다는 점이다. 앙드레 김은 아침마다 서울 지역에서 발간되는 주요 신문을 거의 다 읽었다. 버핏은 현대 기업의 역사를 알기 위해 100년 전 신문을 몇 달에 걸쳐 다 읽었다.

앙드레 김은 마이클 잭슨의 옷을 지을 때,고대 잉카제국 등 인류문명의 발상지에 가서 문명사의 혼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옷을 만들면서 무릎 부분에는 풀을 먹여 걸을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도록 배려했다. 옷 한 벌 짓는데,인류문명사의 혼을 불어넣었던 영감의 세계,그 정신과 기교가 묘하게 맞물린 예술적 영감을 여기서 읽게 된다. 스님이 탱화를 그리기 위해서 무려 1000번을 복사해 그 기예를 익히듯이 말이다.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너는 언제 그렇듯 뜨거운 사람이었더냐….' 널리 알려진 안도현의 '연탄재'라는 시다. 연탄재 한 장이면 한겨울 밤을 다섯 식구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추운 겨울 밤에 한집안 식구가 얼어 죽을는지 모를 일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연탄재 한 장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연탄재 발로 찰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앙드레 김은 옷 한 벌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요,버핏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돈을 모았던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삶의 이치를 이야기한 분이다. 이 세 사람은 각각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명사들이다.

그리고 '필살기'라는 낱말도 생각해 본다. '필살기'란 원래 레슬링과 같은 경기에서 한번에 상대방을 쓰러뜨릴 최후의 기술을 뜻하지만,남들이 감히 따라할 수 없는,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죽여주는 기술'을 말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죽으면 그것이 곧 정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이른바 통섭(統攝)과 융합(融合)의 시대다. 의학도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협진시대를 열었는가 하면,음악도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한국의 국악이 손을 잡고 협연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국의 삼합,비빔밥,김치,한약을 융합의 실례로 드는 이도 있다. 삼합을 이루는 돼지고기,김치,홍어는 각기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 가지 재료가 모여 맛을 낸다. 비빔밥은 밥에다 나물,계란,쇠고기,참기름,고추장을 넣고 비벼서 맛을 낸다. 김치는 배추,고추,마늘,젓갈 등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비벼서 맛을 낸다. 비빈다는 것은 삼합보다 융합의 강도가 더 센 상태이다. 김치는 발효식품이라는 데 융합의 정도가 한 차원 높다.

한국과학문화연구소에서는 '산업융합을 서두를 때다'라는 제목으로 지식융합,기술융합,산업융합에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 어울림이 곧 존재의 본질인 것이다.

사람의 몸은 많은 원소들이 모여 이루어낸, 어울림의 한마당인 셈이다. 그 어울림의 본질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의 양식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랑'은 얼마나 닮았는가. 'ㅁ'과 'ㅇ'이라는 받침 하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이어령 선생이 시(詩)와 신(神)은 받침 하나 차이일 뿐이라고 했듯이 말이다. 신이나 사람이나 그 근본은 사랑일 뿐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야 인류는 행복을 되찾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며칠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느라 잠을 설쳤다. 새삼 젊었을 때,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잠을 못 이루던 생각이 났다.

우리는 '혼'과 '나눔'과 '뜨거움' 그리고 '필살기'라는 화두가 잘 융화되어 새날을 열어나갈 것을 기대해 보게 된다. 쉼 없는 영원한 사랑의 물레질로.

하길남 수필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