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 간 2일(한국시간)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진전을 보지 못했다. 양국은 FTA 협상을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 실시한 이후 지금까지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 업계가 자국산업의 피해 가능성을 이유로 교섭을 강력하게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이날 "FTA가 양국 간 교역과 투자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멕시코 측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국내 합의를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는 '선언적 수준'의 합의만 끌어내는 데 그쳤다.

때문에 이 대통령은 멕시코 시장에 진출하려는 우리 기업이 FTA 체결에 못지않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우회로를 택했다. 이 대통령이 FTA 체결 전이라도 멕시코 정부와 공기업이 발주하는 사업의 국제입찰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칼데론 대통령에게 즉석에서 요청한 게 받아들여졌다. 지금까지 멕시코 정부는 관례적으로 FTA 체결 국가에만 공공인프라 입찰을 허용,우리 기업들은 참여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FTA가 당장 체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실효성 있게 우리 기업을 돕는 방안을 이끌어 낸 이 대통령식 특유의 실용외교라고 청와대 측은 의미를 뒀다. 이와 관련,멕시코 에너지부 장관이 우리 기업 진출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내달 방한할 예정이다.

현재 상당수 우리 기업들은 노후화된 멕시코 정유공장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8~2009년 멕시코의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 규모는 20억달러에 달했는데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멕시코 열병합 · 복합화력 발전소 프로젝트,전력 송 · 배전 건설 사업에도 한전 등 국내 기업들이 입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향후 멕시코 원전 시장에도 참여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됐다는 게 우리 정부의 분석이다. 멕시코는 이미 원전 분야 전문인력 양성 지원을 한국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신속한 공정과 가격 경쟁력 등 멕시코 현지 내 한국 기업들의 우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입찰조건에서 자유로워지면 에너지 · 인프라 · 플랜트 분야에서 큰 성과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국 금융기관의 멕시코 진출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으며,칼데론 대통령은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한 · 멕시코 기업인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여기 계신 기업인 중에 FTA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도 아마 있을 줄 알지만 한 · 멕시코 FTA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차별화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 이후 양국 정부는 △에너지 효율 제고 △전대금융 계약 △발전플랜트 금융지원 △에너지 절약 △양국 기업 교류 확대 △교역 증진 등 분야에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멕시코시티=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