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때 작곡을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리듬이 좋아 오선지에 '콩나물 대가리'를 그려넣었다. 8살에 피아노 학원에 갔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연습했다. 다른 사람이 뭘 시키는 건 딱 질색이었다. 서울예고 시절에도 공연장보다 친구들과 집에서 연습하는 걸 더 좋아했다. 그때 생각했다. 공연을 집에서 하면 안 될까? 레슨 한 번 받지 않고 서울대 음대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숱한 화제를 뿌리며 천재 소리를 듣던 그가 결국 일을 저질렀다. 그래 해보자.2002년이었다.

9년째 연주자와 관객을 집으로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를 열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창수씨(46).'하우스 콘서트'는 마룻바닥에 앉아 연주자들의 땀방울과 숨소리를 느끼면서 함께 흥분하고 전율하는 공연.2002년 여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처음 '하콘'을 시작한 지 어느덧 256회를 넘었다. 지금은 집 보수공사 때문에 도곡동 율스튜디오로 옮겼다.

"세 번째인데 연희동에서 아차산 부근으로 옮겼다가 역삼동을 거쳐 여기에 둥지를 틀었죠.연희동에선 주차 문제로 민원이 좀 있긴 했지만 여긴 괜찮아요. 지나온 곳마다 노하우를 심어놓고 왔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자연스럽게 하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300회 때쯤 연희동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데 아직은 모르겠어요. "

그의 '하콘'이 유명해지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공연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입장료를 비싸게 받고 외형을 중시하면서 자기과시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옮겨 다니는 동안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을 따라 20여군데나 돌아다녔는데 별로 마음이 안 가더군요. 어떤 사모님은 너무나 좋은 저택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뭐랄까,한마디로 진주목걸이 스타일이었죠.그분의 허영을 충족시킬 수는 있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요즘은 하우스 콘서트 형식을 빌려 관람료를 20만원씩이나 받는 곳도 등장했어요.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

괴짜 천재답게 '돈 안 되는 짓'만 골라가면서 한다는 지청구를 많이 들었지만,그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콘'에 출연한 연주자는 1200여명에 달한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이 쥐꼬리만한 출연료에도 불구하고 이 좁은 무대에 흔쾌히 찾아오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마룻바닥과 벽,옆사람의 무릎과 어깨를 통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보며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행복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5회 공연에는 미국 첼리스트 에드워드 애론 등 외국에서 온 연주자 두 명과 서울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씨가 출연했는데 50만원밖에 못 드렸어요. 그래도 그분들은 진심으로 행복해합니다. 관객들의 감동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연주와 최고조의 충만감이 얼마나 짜릿한지…."

지난해 말 갈라 콘서트에는 관객 120명에 연주자가 35명이나 됐다. 누가 출연하는지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게시판에 공지했는데 15분 만에 예약이 끝나버렸다. 연주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하콘'이라면 무조건 믿는다는 마니아들.박씨는 그날 공연 프로그램까지 비밀에 붙였다. 관객들은 누가 나올지 모른 채 설레다가 다음 연주자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맛봤다. 공연이 끝난 뒤 팸플릿을 받고는 또다시 행복해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도 하콘에 출연했다. 최소 개런티가 5만달러 이상인 최고의 아티스트가 단돈 100만원에 '오케이'하고 온 것이다. 얼마나 뿌듯했던지.80세가 넘은 고령이었지만 연주는 감동적이었다. 중간중간 음정이 틀린 데도 있었지만 그게 하콘의 매력 아닌가. "그렇습니다. 요즘은 다들 음악을 성형미인처럼 만들려고 해요. CD 제작하는 데 몇 천만원 들었다는 얘길 듣고 마음이 아팠죠.저는 하콘 연주 실황을 직접 CD로 만듭니다. 돈도 많이 안 들어요. 그야말로 펄떡이는 음악이 그대로 살아있죠."

'하콘'에 가장 자주 등장한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씨다. 관객이 제일 많이 몰린 것도 그와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씨의 협연 무대였다. 연희동 집의 30평짜리 거실에 180명이 모여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연주자들의 땀방울이 튀고 관객들의 환호가 뒤엉키면서 모두들 심장이 멎는 듯한 무아경에 빠져 들었다.

'하콘' 연주자들에게 주는 출연료는 정해져 있다. 관객들의 입장료(2만원) 총액 중 절반을 뚝 잘라 준다. 나머지를 진행비와 관객 · 출연자들의 뒤풀이 비용으로 쓴다. 그러니 항상 적자다.

아무리 돈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토록 이윤을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창한 거 없습니다. 그냥 더 많은 사람이 진짜 음악을 즐겼으면 하죠.5만원이나 10만원 넘으면 못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대신 비용을 최소화하죠.우리 스태프 9명도 자원봉사자예요. 그러니 가능하지요. "

그는 시간강사로 나가는 한성대에서 학생들에게 "스포츠의 금메달과 콩쿠르의 금메달 차이가 뭐냐"고 가끔 묻는다. 학생들의 답은 각양각색이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포츠의 금메달은 목적이지만 예술의 금메달은 시작점이다. "

이 대목에서 다시 물었다. 음악이 뭡니까? "음악은 일종의 구조이지요. 다른 것과 다 연결돼 있는 것.저에게 음악 행위는 일종의 배설이죠.관객들이 행복함을 느끼면 전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을 느낍니다. 스스로가 아니라 관객을 통해 행복을 발견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