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월드컵을 단독 중계하는 SBS는 전 경기에 가상광고를 붙였다. 생중계 56개 경기와 딜레이 중계 8개,재방송 13개,하이라이트 58개 등에 평균 15개씩 총 1100회 이상 가상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화면 한쪽에 현대자동차 삼성카드 신한금융투자의 브랜드 자막과 동영상이 3~15초씩 등장하고 있다. 지난 3월 SBS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처음 선보인 가상광고는 SBS 마스터스골프대회와 발렌타인골프대회,MBC 프로야구 개막전,KBS 월드컵 평가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프로그램 내용에 브랜드를 드러내는 간접광고도 지상파 채널에서 급증하고 있다. 지난 5월 SBS '인기가요'에 처음 등장한 '네이트'를 비롯해 간접광고를 내보내는 프로그램은 11개로 늘었다. MBC 드라마 '황금물고기'와 예능 프로그램 '쇼음악중심',SBS 드라마 '커피하우스'와 '생방송 인기가요'에 LG디오스 크로커다일 노키아 등의 브랜드가 1~10회씩 등장했다.

◆케이블채널에는 10분의 1 불과

그러나 케이블채널들에서는 가상광고와 간접광고를 찾아보기 어렵다. 광고 요금이 지상파의 10분의 1 이하인데도 지금까지 방송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J골프의 마드리드마스터스 중계를 비롯해 KBS스포츠와 MBC스포츠미디어의 프로야구 경기에 SKT와 신한금융그룹이 가상광고를 내보낸 정도다. 지상파 채널이 100개 안팎의 경기에 가상광고를 유치한 것과 달리 케이블채널은 10여개에 불과하다.

케이블채널의 간접광고도 1~2월 스토리온채널 '토크&시티 시즌4'의 가구업체 리바트,1~4월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KOREA 시즌2'의 GM대우,헤라,디앤샵 등이 고작이다. CJ미디어가 2개,CU미디어가 1개를 내보냈지만 지상파가 간접광고 방송을 본격화한 5월 이후에는 거의 없는 상태다. 케이블 업체의 한 임원은 "이런 추세라면 지상파가 간접 · 가상광고 시장의 90%를 독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1월 개정방송법 발효로 시작된 가상광고와 간접광고를 지상파가 싹쓸이하고 있다. 광고시장을 키우기 위해 도입한 두 광고가 지상파의 배만 불리고 있는 셈이다. 간접광고 영업권까지 지상파가 독점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디어와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방송법 개정으로 지상파의 독과점 구조가 더욱 강화됐다"며 "방송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간접광고 영업권까지 지상파 독점

가상광고는 컴퓨터그래픽으로 가상의 광고 이미지를 삽입하는 광고기법.간접광고는 교양과 오락프로그램에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방식이다. 두 광고의 가격은 미디어별로 노출 위치와 시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일반 광고보다 비싸다. 업계에서는 가상광고 시장이 연간 300억원,간접광고 시장은 2000억원 안팎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광고가 지상파로 쏠리는 것은 시청점유율과 광고효과 때문이다. 지난해 AGB닐슨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지상파 1개 채널의 시청점유율은 평균 11.8%이다. 이에 비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개당 평균 0.4%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가상광고에 이어 간접광고 수익까지 지상파가 독차지하는 구조다. 김승수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개정 방송법에는 방송사만 간접광고를 영업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따라서 대기업의 협찬금으로 제작비를 보전했던 예전에 비해 제작사들의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제작사는 찬밥 신세

박창식 김종학프로덕션 대표는 "방송사만 간접광고를 영업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라며 "킬러콘텐츠의 90% 이상을 만드는 외주제작사를 무시한 법 개정"이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판권을 거의 독점해온 지상파채널이 간접광고까지 가져가는 구조는 난센스라는 얘기다. 두 광고를 싹쓸이하고 있는 지상파채널은 케이블채널과 격차를 더욱 벌릴 전망이다. 지난해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의 광고 매출은 총 1조3842억원이었다. 201개 PP들의 매출 총액인 7695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성기현 케이블TV협회 사무총장은 "간접광고와 가상광고를 매체 구분 없이 동시에 허용한 조치는 지상파의 광고시장 독점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매체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하려면 뉴미디어(케이블방송)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