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의원입법의 현주소] "표에 도움" 세금 깎자는 조특법만 200개…포퓰리즘 만연
지난달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정부 고위인사와 의원들 간에 '국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입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의 한 고위 인사가 "각종 비과세 · 감면으로 지난해 덜 걷힌 세금이 30조원으로 국가부채의 10분의 1에 달한다"며 정치권의 선심성 입법행태를 겨냥했고,민주당등 야당은 "정부가 국회를 폄하했다"며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포퓰리즘 입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바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이다. 18대 국회에서 2년간 의원들이 발의한 조특법은 무려 200건으로 수천 종류의 법안 중 1위를 기록했다. 사흘에 한 건꼴로 발의된 셈이다. 조특법뿐만이 아니다.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 입법안은 6월 말 현재 7195건이다. 지난 17대 4년간의 전체 발의 건수를 웃도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쏟아지는 의원입법의 현주소] "표에 도움" 세금 깎자는 조특법만 200개…포퓰리즘 만연
◆세금 깎아주는 법안 홍수


18대에 발의된 조특법 개정안을 분석해 본 결과 비과세 · 감면 등 세금혜택의 일몰 시한 연장과 세금혜택 항목 추가가 가장 많았다. 두 가지 내용을 동시에 담은 법안도 25개나 됐다. 세금 공제 비중을 확대하는 법안은 9건,위의 세 가지 항목을 다 포함한 법안도 3개였다. 특히 연말이면 소득공제 확대와 관련된 조특법 발의가 봇물을 이룬다. 하지만 발의된 조특법 200건 가운데 가결된 법안은 8건에 그쳤다. 나머지는 대부분 폐기됐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 등 38명은 지난해 기부금의 과세특례 기간을 2012년 말로 3년 연장하고 특례기부금 소득공제 이월기간을 1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조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부금 일몰 시한 연장은 '상임위 대표법안'(위원장 대안)으로 넘어가 통과됐지만 특례기부금 이월내용은 폐기됐다.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 등 10명은 내국인의 해외자원개발 배당소득의 법인세 면제 일몰 시한을 2012년 말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을,백재현 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자영업자의 의료비 등 공제 일몰 시한을 3년 연장하는 법안을 냈지만 모두 폐기됐다.

◆포퓰리즘과 한건주의

의원 입법안이 넘쳐나는 이유는 과거보다 발의요건이 간단해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예전에는 2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2003년부터 10명의 동의만 받아도 법안을 제출할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표를 의식한 의원들의 한건주의가 근본 원인(강원택 숭실대 교수)"이라고 지적했다. 의원입법 대부분이 특정 지역이나 계층 · 단체에 특혜를 주는 내용이라는 점에서다. 실제로 의원법안 건수에서 조특법이 1위를 차지했고 국가재정법(5위),소득세법(6위),지방세법(7위) 등 세금 관련 법안이 대부분이었다.

세금이 지역구 표심과 연결되다 보니 너도나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통과될 때까지 계속 제출하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18대에 조특법 개정안만 6건을 제출한 김우남 민주당 의원(제주시 을)은 골프장, 과학단지,선박 등 제주지역 기업에 세금혜택을 주는 내용의 조특법을 해마다 발의하고 있다. 2008,2009년에 낸 조특법이 대안폐기되자 올해 3월 또다시 제주도 내 기업에 10%의 법인세를 적용하고 일몰 시한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의원들의 '한건주의'도 문제로 지적된다. 의정활동을 평가받는 객관적 잣대가 없어 법안 제출 건수라도 많이 채우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다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공동발의할 때 내용도 모르고 이름을 적는 의원이 적지 않고 대표발의할 때도 한두 줄 고쳐서 제출하는 의원들이 있다"고 털어놨다. 93개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60% 가까운 원안 가결률을 기록한 정진석 한나라당 의원은 "의원들이 책임지고 발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시장경제 원리 침해

우윤근 법제사법위원장은 "의원이 다양한 법안을 내는 건 긍정적이지만 그 내용이 포퓰리즘이거나 지역구의 특정한 이해관계에 매인 건 옳지 않다"며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법안의 상당수가 특정계층이나 지역에 특혜를 주는 것이어서 시장경제 원리를 침해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의원들이 지역 민원이나 특정계층의 표를 의식하는 특혜법안을 줄줄이 발의함으로써 조세형평성을 훼손하고 세수 확충의 어려움도 가중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입법의 '남용'을 막으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원택 교수는 "입법을 많이 해야 의정활동을 잘했다고 사회단체나 언론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한건주의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법안이 통과된 뒤 나타나는 법제효과나 수반비용에 대한 결과,즉 예산의 낭비 여부나 선심성 정책 등의 부작용은 추적이 잘 안 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찬표 목포대 교수는 "입법활동만 갖고 의정활동을 평가해선 안 되고 상임위 활동이나 정부 견제 등 다양한 기준에 맞춰 의정활동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