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500억원 이상 빌린 대기업들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낮은 등급을 받은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거나 사업을 청산해야 한다.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신용평가는 올해 말까지 효력이 발생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란 한시법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왜 구조조정을 하느냐 하는 점이다. 구조조정의 목적은 단연코 하나의 기업이라도 더 살리는 데 있다. 현행 기업 구조조정 제도가 앞으로 대폭적인 개선과 보완이 이뤄져야 하는 근본 이유다.

이를 위해 첫째, 구조조정 여건이 변화됐음을 인식해야 한다. 기촉법 제정 당시만 해도 외환위기로 인해 발생한 부실기업들을 신속하게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정책 과제였다. 지금은 다르다. 위기 극복은 물론 고용 증대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경제 확장을 해야 하는 시기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 여건을 마련해 주는 데 정책의 역점을 둬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 건설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데만 그쳐서는 안되고 건설 수급 구조와 같은 사업환경 개선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둘째, 이 과정에서 억울한 기업이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신용평가 등을 하는 과정에서 대체로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산술적 평가지표'를 선호한다. 하지만 기업 경영은 산술 지표로만 평가할 수 없는 살아있는 생물체의 생존 양식과 유사하다. 부도 위기에서도 사업환경 변화,경영자의 극복의지 등에 힘입어 기업을 다시 살린 사례는 큰 감동을 준다.

셋째, 구조조정의 후유증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하나의 기업은 원자재,부품,물류,유통과 같은 수많은 연관 사업체들과 유기적 협력 속에서 성장한다. 한 기업의 퇴출은 궁극적으로는 이와 관련된 수많은 기업의 경영 부진으로 이어지며 결국 실업 증가로 귀결된다. 기업 퇴출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살리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넷째,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기촉법에 기초한 구조조정 제도 전반의 효율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 법에 따르면 기업 구조조정은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금융회사 총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이 되는 주채무계열에 대한 재무구조평가,대출액이 500억원 이상 되는 대기업 대상 신용위험평가,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 대상 상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은 이중으로 평가를 받는 부담이 생긴다. 각 산업별이나 대기업 그룹의 사업 구조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인 잣대를 지니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기업 부채 비율을 무조건 200% 이내로 제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당장 기업의 모험 정신을 옭아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나간 재무지표만을 가지고 대기업 사업을 옥죄는 금융 감독 기능은 글로벌 경쟁 틈바구니에서 유망 산업을 육성하려는 실물경제 주무부처의 정책 목표와도 상충된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구조조정이 너무 도가 지나쳤다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인정하는 사안이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지금 활력을 잃고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공포감을 잊고 기업들이 마음껏 사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금융 부문과 협력할 수 있는 자율적 환경을 조성해 주는 차원에서 기업 구조조정 정책은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기촉법은 세계 유일의 제도로 법률적으로도 시장 경제 원리에 배치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유병규 현대경제硏 경제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