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백영훈 원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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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받는 백영훈 원장을 얘기할 때 독일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대 졸업 후 1955년 서독 쾰른대 경제학과에 진학,3년 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 28세에 중앙대 교수로 강단에 서 서독 경제발전에 대한 강의를 맡았다. 교수가 된 이후 5 · 16 사태가 발생했고 유학생 병역기피자로 논산훈련소에 끌려갔다. 새옹지마였을까. 그의 실력을 알아본 당시 신응균 주한 서독 대사가 그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육군 훈련병에서 하루아침에 서독 경제사절단으로 가는 정래혁 당시 상공부 장관의 특별보좌관이 됐다.
박 대통령이 1967년 4월 제6대 대통령 선거 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하자 백 원장은 국내 최초의 민간연구소인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을 설립,경부고속도로 보고서를 썼다. 이후 10년 동안 박 대통령 경제자문 역할을 했다. 제9,10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백 원장은 한 · 독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독일 정부로부터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1967년 4월 제6대 대통령 선거 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하자 백 원장은 국내 최초의 민간연구소인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을 설립,경부고속도로 보고서를 썼다. 이후 10년 동안 박 대통령 경제자문 역할을 했다. 제9,10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백 원장은 한 · 독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독일 정부로부터 대십자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