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박근혜 총리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 조각 때를 포함해 여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등장했던 메뉴다. 매번 '설(說)'로 끝났다. 진정성 있는 고민보다는 난국 타개를 위해 박근혜의 신뢰 이미지를 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강했던 탓이다.

이번 박근혜 총리론도 출발점은 비슷하다. 여권은 지금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6월 지방선거 참패로 지방권력이 대거 야당에 넘어갔다. 눈 앞의 7 · 28 재 · 보궐선거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8곳 중 한두 곳을 제외하곤 어렵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완패한다면 정국 주도권을 야당에 뺏길 것이다. 4대강 사업 등 현 정부가 강력히 추진해온 주요 국정과제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여권이 다급해진 상황이다. 여기까진 과거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부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과거 친이(친이명박)계 일각에서 제기됐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친박(친박근혜) 내부에서도 동조 흐름이 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에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최대 갈등 요소였던 세종시 수정안 문제가 일단락된 게 출발점이다. 자신들의 운명이 걸린 총선과 대선이 그리 머지 않았다는 점도 위기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고정 지지표가 10~15% 정도"라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화해하지 않는 한 당장 7 · 28 선거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표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가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10%면 수도권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고도 남는 표다. 이른바 '선거필패론'이다.

결국 '박근혜 총리론'의 명분은 친이와 친박의 화해를 통한 정권 재창출이다. 정확하게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해다. 두 사람이 갈등을 지속하는 한 여당인 한나라당은 분당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수의 분열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박근혜 총리'의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신뢰관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대선 후보 경선 때 쌓인 앙금은 18대 총선 공천을 거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면 대립은 두 사람 간 갈등의 완결편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박근혜 전 대표가 총리가 되려면 100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박근혜 총리'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몇 가지 전제조건이 갖춰진다면 가능하다.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화해다. 같은 배를 탔다는 공동운명체 의식을 공유할 때 신뢰회복은 가능해진다. 형식적인 대화가 아니라 마음을 연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정동반자 관계의 회복도 중요한 요소다. 친박 측은 "대선 유력주자인 박 전 대표의 실체를 청와대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청와대는 어려울 때 박 전 대표가 국정 운영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본질은 '차기'다. 잠재적인 미래권력인 박 전 대표가 현재권력인 이 대통령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한 갈등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가 자신의 후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흔쾌히 인정한다면,극단적인 대결 대신 화해모드가 가능해질 수 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화합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 필요한 건 역(逆)발상이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