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상속ㆍ증여 은행 상품‥生前서 死後까지 자산관리…'유언 신탁' 을 아시나요
선진국에서는 유언장 문화가 익숙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많은 사람이나 유언장을 작성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가장의 죽음에 유가족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유가족끼리 볼썽사나운 유산 분쟁을 벌이는 일도 있다. 명문화된 유언이 있어야 자녀들이 부모의 뜻을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속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의미에서 유언장 작성부터 유언 집행까지 모든 절차를 금융회사가 대행해 주는 '유언신탁' 상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또 나이가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2세에게 가업을 승계해야 하고 이런 절차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은행들은 중소기업들의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컨설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 유언신탁

은행의 상속 · 증여 상품으로 대표적인 게 유언신탁이다. 유언신탁은 은행이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유언서를 보관해 주거나 그 유언서의 내용에 따라 유언을 집행(재산 분배)해주는 상품이다. 최근에는 신탁을 통해 생전에서 사후까지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다.

노령 또는 건강상의 문제로 상속에 대한 관심이 높은 고객과 상속이나 사후 증여가 은행을 통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길 원하는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특히 장애 자녀나 이복 자녀를 두고 있는 등 다양하고 특수한 상황에서 상속할 경우 사후에 발생할 수 있는 유산 배분 문제를 생전에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대부분 17세 이상의 개인을 가입 대상으로 한다. 최소 가입금액은 금융사별로 1억~5억원이다. 신탁기간은 유언서 보관의 경우 유언자 사망 시까지,유언서 집행의 경우는 유언의 집행 종결 시까지로 하고 있다.

유언장 관리신탁계약 수수료는 연간 5만~10만원 정도다. 유언은 일반적으로 공증 등 절차상 오류가 있으면 효력이 없어지는 사례가 많아 공정증서 유언을 받아야 한다. 이때 수수료는 상속 금액에 따라 최대 수백만원이 든다. 유언신탁을 이용하면 공정증서 유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유언장을 관리할 수 있다. 분실이나 위조 위험도 없다. 유언신탁을 판매 중인 금융회사들은 법무법인과 세무법인,대형 병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 사후 법적 효력을 높이고 있다. 또 별도의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더라도 유언신탁 계약서가 신탁법상 유언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기 때문에 가입자 사후에도 유지에 따라 유산을 배분할 수 있다. 유언신탁에 가입하면 생전에 상속할 재산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상속세 등에 대한 평가를 미리 받아볼 수도 있다.

올해 들어서는 외환은행 하나은행 산업은행 등이 유언신탁 상품을 새로 출시했다. 외환은행은 올해 초부터 VIP 고객을 위해 유언서 작성 지원 · 보관,상속 재산의 집행 및 유훈 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언신탁서비스'를 시행했다. 유언 관련 상담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전문 변호사 및 세무사 상담을 통해 상속 재산을 둘러싼 남은 가족의 혼란과 분쟁을 방지하고 원만하게 재산을 이전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유훈 통지 서비스'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유언서의 법적 구비 요건을 따지지 않고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유훈' 또는 '재산목록 등 중요한 것'을 기재한 문서를 안전한 은행금고에 보관했다가 미리 정한 수령인에게 유언자의 사후에 발송해 준다.

하나은행이 최근 출시한 '하나 리빙 트러스트(Living Trust)'는 유언장 없이도 신탁계약에 의해 상속플랜을 달성할 수 있는 신탁상품이다. 고객이 생전 및 사후에 신탁재산의 수익권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자를 지정함으로써 유언서 없이도 금전,증권,부동산 등 고객자산을 전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고객이 생전에 지정한 방식으로 고객의 사후에도 상속인 등의 수익자를 위해 종합적인 자산관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하나은행은 효과적인 상속플랜을 실현하기 위해 법무법인 한울,세무법인 진명 및 강북삼성병원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은행은 물론 증권사와 보험사도 유언신탁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 가업승계 컨설팅

은행들은 장기적으로 기업 고객들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최근 중소기업 가업 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규모가 큰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가업 승계를 추진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은 체계적인 가업 승계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상속 · 증여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절세 전략과 함께 가업 승계 과정에서 내외부적 경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안정적인 경영권 이양 모델이 필요하다. 은행들은 승계 준비 시기로 1세대의 경우 약 60세,자녀 나이 약 30~35세가 적당하다고 보고 이 시기에 적극적으로 가업 승계 컨설팅을 권하고 있다. 승계 준비 기간은 5년 정도 소요된다.

기업은행은 2006년 은행권 최초로 관련 서비스를 개발해 120여개 기업에 대해 중장기 가업 승계 계획 및 상속 증여 절세 방안 등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2008년부터는 건국대와 공동으로 '차세대 최고경영자(CEO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세무법인들과도 '가업 승계 세무 대리 서비스' 업무협약을 체결,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최근 중소기업 1세대와 2세대 20여쌍을 초청해 1박2일로 '인성리더십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2007년 가업 승계를 전담할 '기업컨설팅팀'을 구성하고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등 발 빠르게 가업 승계 컨설팅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이미 100여개 기업이 우리은행의 컨설팅으로 가업 승계작업을 마쳤다. 최근에는 상속 증여와 관련된 금융 · 법률 상담을 지점과 인터넷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지난해부터 'KB 와이즈 컨설팅'이라는 가업 승계 전용 프로그램을 구성해 총 150여건의 컨설팅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국제금융역,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공인회계사 등 총 16명의 전문가들이 매출 100억~500억원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2주간 무료로 컨설팅을 진행해준다. 신한은행은 기업고객의 2세 경영인을 위한 경영 교육프로그램을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우수 기업고객 중 2세 경영자 30여명을 각 영업점의 추천을 받아 3개월간 진행한다.

하나은행도 '중소기업 가업 승계 컨설팅팀'을 구성하고 공인회계사 2명을 배치해 대출 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외환은행 역시 일부 PB영업점에서만 해오던 컨설팅 상담 업무를 전국 지점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정재형/이태훈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