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심은 그 한이 없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높이 성공하고 싶어 하고,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런 목표가 있는 욕심은 권장할 사항이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과유불급처럼 정도(正道)를 넘어서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불행은 정도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기준은 무엇인가. 정도를 가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정도란 무엇인가.

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은 사람들에게‘무소유’로 통한다.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말라는 말이다. 법정스님은 유언으로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라고 했다.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내 것이라고 되어있는 것이 있다면 버리고 가겠다했다. 인연이 다했으면 가진 것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져본 사람은 무소유의 편안함을 알 수 있고, 악착같이 재물을 모아본 사람만이 집착에 대한 허무를 말할 수 있다. 부자들이 기부나 자선사업에 적극적인 것이 그 이유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무소유의 실천인 것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소동파는 부친이 생전에 가장 아꼈던 네 폭의 그림을 스님에게 주면서 말했다.
“천하에 이런 진품(珍品)을 소장한 사람은 많지만, 그들은 모두 소장품을 3대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물건은 구할 때는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구하면 시종 잃어버릴까 마음이 불안해합니다. 나도 이것들을 오래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스님께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이것을 어떻게 지키시겠습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 목숨을 걸고 부처님과 조사 앞에서 이 그림을 영원히 지켜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에 소동파는 “세상에는 부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스님도 한 평생만 지킬 수 있을 따름입니다.”

스님은 난처해졌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동파는 대답했다. “제가 스님에게 드리는 그림을 훔치는 자가 있다면, 그의 후손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그림도 그들의 손에 오래 있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도난당하고 싶지 않은 것은 스님의 일이고, 훔치고 훔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일입니다. 다만 스님께서는 이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보호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재물은 세상에 없다. 소동파도 세상 물건이 다 인연의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알기에, 가장 진기한 그림을 소장하기 보다는 천하 사람들에게 내 주었다. 나와의 인연을 넘어 세상 사람과 인연을 맺도록 스님에게 맡긴 것이다.

모든 인연에는 그 시기가 있다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사람과 재물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가 되고 싶어도 좋은 인연을 만들지 못하면 기회를 옆에 두고도 잡을 수 없는 법이다. 설사 소유한다 해도 손에서 떠날 때에는 그 인연이 다 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연에 따라 재물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법정스님의 책들도 인연이 다했기 때문에 유언으로 절판하기로 결정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책이나 소동파의 그림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의 인연을 맺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진 것이다. 좋은 인연을 만들려면 소유보다는 베풀어야 한다. 재물을 나를 위해 사용하지 말고 세상을 위해 사용하면 그것이 곧 좋은 인연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언젠가는 모두 떠난다. 재물(財物)이 모이지 않는다고 속상해 하거나 무리수를 두지 마라. 시절인연에 따라 기다리고 준비하면 재물은 좋은 인연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자기 그릇만큼만 채우면 된다. 넘치면 잠시 비우고 다시 또 채우면 될 것이다.(hooam.com / whoim.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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