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국내 정유사들에 최악의 해였다.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 석유수요는 10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여기에 신규 증설물량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며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은 만족할 만한 경제 회복을 이뤘지만,유럽과 미국은 산업생산성 회복이 많이 지연됐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등유와 경유 재고가 크게 늘었고,정유사들의 수익성도 하락했다.

하지만 올해 정유업황은 점진적인 회복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세계 석유제품 수요가 회복되고 있다. 지난달 세계 석유제품 수요는 8558만b/d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 늘었다. 마이너스였던 세계 석유제품 수요는 지난해 9월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물론 지난해가 워낙 나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보수적으로 판단해도 전년 대비 180만~200만b/d의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더 긍정적인 점은 세계 석유수요의 55%를 차지하는 OECD 국가들이 수요 회복 기미를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달 최대 석유제품 소비국인 미국의 석유수요는 전년보다 8.4% 늘어나 하반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역내 신규 정제설비 규모도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 지역에서는 인도와 중국 등 신규 정제설비 물량이 241만b/d나 증가했고,석유제품의 수익성도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해 역내 신규 정제설비는 약 93만b/d(생산능력기준 3.8%)로서 절대 규모가 전년 대비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금년 역내 석유제품 수요는 120만b/d가 예상되는데 적어도 전년의 대규모 신규물량을 서서히 소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내년에도 신규 정제설비 증가는 71만b/d로서 전년 대비 감소할 전망이어서 작년과 같은 공급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석유제품의 재고수준이 전년 대비 낮아진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해에는 세계 정유사들이 일제히 가동률을 하락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요 감소로 인해 석유제품 재고가 증가했다. 등유 · 경유는 전년 상반기에는 과거 5년 평균재고 수준을 크게 웃돌며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재고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유사의 가동률 축소와 석유수요의 점진적인 회복으로 등유 · 경유 재고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과거 5년 평균재고 대비 약 10% 정도 웃도는 수준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세계 원유 및 휘발유 재고는 과거 5년 평균 재고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석유수요만 견조하게 유지된다면 재고부담에 따른 정제마진 악화는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동산 원유 프리미엄의 하락 가능성이다. 지난해 급증한 인도와 중국의 신규 정제설비는 주요 원재료가 중동산 원유였다.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유가 하락을 방지하고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20만b/d를 감산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아시아지역 정제설비 급증으로 중동산 원유 수급은 타이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일반적으로 중동산 두바이 원유보다 높은데,지난해에는 WTI가격이 연중 내내 두바이유보다 낮았다. 선진국 시장의 원유수요 감소로 WTI 가격은 하락한 반면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원유수요는 상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정유사들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보다 일부 높은 가격에 원유를 도입했고,이는 매출원가 상승으로 이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올해는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높게 형성되며 제자리를 찾는 모습이다. OPEC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일부 OPEC 국가들의 감산 이행률이 낮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익성 개선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반기 국제유가는 지금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 리서치기관들도 석유수요 증가 기대감 및 실물경기 회복을 바탕으로 유가 상승을 예측하고 있다. 다만 국제유가의 상승폭은 다소 제한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남유럽 재정위기에 따라 유럽 실물경기 후퇴 가능성이 있고,원유 선물을 인도하는 미국 쿠싱(Cushing) 지역의 원유재고가 높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상황이 올해 안에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유사들의 1분기 실적은 전년동기 대비 감소했지만 3개 분기 연속 이어오던 석유사업의 영업적자에서 흑자로 반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분기 영업이익은 1분기 대비 크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등유 · 경유 수익성이 1분기보다 개선됐고,판매물량도 증가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의 산업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용과 수송용에 필수적인 등유 · 경유 마진은 하반기에도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과거 2004~2008년의 호황기와 같은 수익성을 시현하기는 어렵지만,적어도 국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