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6일 돌연 사의를 표명하자 재계는 적잖게 충격을 받는 분위기다. 전경련의 수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임기 도중 사의를 표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착공한 신사옥 건축과 300만명의 신규 고용 창출,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연계한 비즈니스서밋 개최 등 안팎의 현안들도 산적해 있다.

전경련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대정부 대화창구나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상징성도 여전하다.

때문에 차기 회장직을 한시라도 비워둘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일치된 견해다. 관심의 초점은 누가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냐다. 꼼꼼하기로 정평이 난 조 회장이 회장단 내 사전 조율을 통해 후계 구도를 미리 짜놓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전경련 회장직을 선뜻 맡겠다고 나선 총수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4대 그룹 "경영 현안 산적"

이건희 삼성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 · 기아차 회장 측은 일단 차기 회장직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전경련 회장단이 이 회장을 추대할 일이 없을 것이고,설사 추대한다 하더라도 (회장직을)맡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실제 지난 3월 말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은 애플 구글 등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경영 현안들을 직접 챙기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경우엔 이건희 회장과 달리 전경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데다 부회장단 중 최고 연장자인 점을 들어 '최적임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별로 뜻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재계의 한 유력 인사는 "정 회장이 최근 차기 회장직을 맡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경련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동안 전경련과 일정한 거리를 둬온 구본무 LG 회장이나 아직 회장단을 통솔할 만한 연령대에 도달하지 못한 최태원 SK 회장(50)도 후보 명단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다.

다만 굳이 4대 그룹 총수 중 한 사람이 나선다면 정몽구 회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 재계 일각의 관측이다. 이명박 대통령 등 정부 차원에서 고용 창출과 경제난 타개를 위한 '역할'을 요청해올 경우 마음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연장자 선임원칙 지켜질까

회원사들은 갑작스런 전경련 회장 유고로 임기 도중에 교체작업이 이뤄졌던 선례를 들여다보고 있다. 부회장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에게 잔여임기를 맡긴 후 이듬해 2월 총회에서 정식으로 회장을 선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의미다. 김각중 경방 회장(85)과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83) 체제가 대표적이다.

김각중 회장은 전임자였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74)이 1999년 그룹 해체로 해외로 출국하자 연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직무 대행을 맡았고 2000년 2월 회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강신호 회장도 2003년 10월 전임자인 손길승 전 SK 회장(69)이 SK사태로 물러나자 최연장자 자격으로 전경련 회장 업무를 수행했으며 이듬해 2월 총회에서 정식 선임되는 수순을 밟았다.

현재 전경련 회장단 중 가장 연장자는 1938년생인 정몽구 회장과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이다.

이어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1941년)과 이건희 회장(1942년),박용현 두산 회장(1943년),김준기 동부 회장(1944년),구본무 회장(1945년),정준양 포스코 회장(1948년),조양호 한진 회장(1949년) 등이 1940년대 출생이다.

정몽구 회장과 이준용 회장의 나이는 같지만 3월생인 정 회장이 7월생인 이 회장보다 생일이 빠르다. 원칙대로 하자면 정 회장이 내년 2월까지 직무대행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정 회장이 끝내 고사할 경우 이 회장이 유력한 카드로 부상할 수 있다.

다만 이 회장의 경우엔 강신호 회장의 후임자를 논의하던 2007년 '70대 회장 불가론'을 주장했던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편 효성그룹은 조 회장의 건강 악화가 그룹 경영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효성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상운 부회장이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경영 현안들을 챙겨오고 있지만 그룹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각 부문장들이 사업부를 독립적으로 경영해왔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일훈/송형석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