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 국회표결에서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드러났던 본회의장 전광판의 잔영(殘影)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벌써 '원안+α'논쟁의 시작이다. 아무리 식언(食言)과 말바꾸기에 도가 튼 정치인들이라지만,그들이 그토록 외쳤던 '원안 고수'는 결국 정략이었음을 자인하는 행태다. 원래 신의와 약속은 정치인들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α'의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없다. 당초 수정안의 핵심이었던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과 대기업 입주 그대로다. 충청도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은 곧 원안에 이 같은 +α를 담은 또다른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태세다. 민주당의 +α에 대한 입장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이명박 대통령이 건곤일척의 승부수로 던진 세종시 수정안을 침몰시켜 국정 리더십에 치명타를 가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으니,그 여세를 몰아 수정안의 알맹이를 빼먹자는 얘기다.

현실정치의 역학구도상 세종시 수정안 폐기가 불가피해졌을 때부터 이런 수순이 예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앞뒤 맞지않는 억지를 어떻게 봐야 할지는 여전히 당혹스럽다. 민주당 등 야권은 처음부터 원안을 고집했었고,+α의 모든 내용을 담았던 수정안을 여당 친박 진영과 함께 없던 것으로 돌렸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당연하다는 듯 +α를 내놓으라고 한다. 자기모순적 행위이자 전형적인 말바꾸기에 다름아니다.

정부는 이제 원안 추진 이상의 다른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α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폭발력이 큰 정국의 뇌관이자,계속 정부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딜레마이다. 원래 수도분할에 따른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을 막기 위해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반대급부가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대기업 입주 등의 인센티브였다. 부처만 이전할 경우 자족기능 결핍으로 결국 세종시는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는 유령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으니 산업 · 대학 · 연구 기능 중심의 경제도시를 만드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 논리였다.

그런데 이제 실패가 불보 듯해진 '원안 그대로의' 세종시가 정부의 족쇄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은 눈앞의 표 계산에만 파묻힌 정략의 제물(祭物)이 되고 말았지만,세종시를 유령도시가 되도록 방치한다면 그 실패는 결국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정안에 담겼던 인센티브에 대해 다른 지역들이 형평성의 문제를 들어 크게 반발했었고,이제 수정안 소멸로 대기업들의 원형지 개발이나 입주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없어졌다. 수정안 반대 진영이 원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α의 근거는 그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에 포함된 '문화와 첨단기술이 조화되는 문화 · 정보도시'의 개념적 기본방향일 뿐,구체적인 실천 수단을 담고 있지 않다.

+α가 또다시 특혜논란과 지역갈등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는 얘기다. 당장 엊그제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이 "대기업을 이전하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자는 세종시+α론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나라에 세종시만 있는 게 아니고,세종시 몰아주기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게 그 말뜻임을 짐작키 어렵지 않다. 세종시+α논란이 새로운 정쟁,국론분열의 도화선이 되면서 앞으로 얼마나 심각한 국력낭비를 가져올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어제로 40주년을 맞았다. 한국경제 대도약의 디딤돌이었던 경부고속도로 입안과 건설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한 노학자는 "세종시는 출발부터 정치적 사심(私心)이 가득한 분열적 발상이었고,경부고속도로는 국가백년대계의 공심(公心)에 기반한 통합적 사업"이라고 일갈했다. 그 잘못된 선택의 대가는 뒷걸음질치는 역사일 것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