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콤플렉스'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세계 대회에서 1등을 놓치면 무슨 큰 죄를 진 듯이 고개를 숙이고 우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1등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우리는 놓친 게 더 많았다. 품위나 멋,여유,세련미 같은 것들 말이다. 선수들도 그랬고 나라도 그랬고 기업도 그랬다. 그게 불과 10년 전쯤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랬고 올초 동계올림픽에서도,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시도 자체를 중시하고 본선 통과 정도면 만족하고 의미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생각해보면 이건 1등 콤플렉스를 벗어난 것이라기보다는 1등 경험을 쌓아가며 생긴 여유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중적 취향과 호흡을 같이하는 스포츠는 이제 1등보다는 도전 자체를 의미있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흐름이 바뀐 것도 같다.

이에 비해 기업은 오히려 이제 1등이 아니면 아무 의미없는 시대를 맞았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펼쳐진 '대항해 시대'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힘입어 다시 시작된 것이다. 1등을 목표로 뛰는 나라나 기업이 모든 것을 얻고 가만 앉아있다가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마는 가혹한 시대다.

대항해 시대의 성공 조건은 간단하다. 우선 스피드가 중요하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가장 먼저 바다에서 기회를 보고 달려나가 바다 위에 새로운 국경선을 그었다.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닷컴 같은 젊은 기업들은 그 빠른 스피드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스피드 못지않게 신경써야 할 것은 합종연횡 혹은 요즘 용어로 인수합병(M&A) 혹은 협업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제국주의였지만 대항해시대의 승자였던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필요한 경우 연합전선을 형성해가며 땅을 넓혀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 그것도 원대한 글로벌 비전이다. 세계 1등이 되겠다는,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글로벌 비전이 당시 인구 150만명에 불과했던 네덜란드를 해상왕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대항해 시대에는 1등이 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브라질 같은 큰 나라도 '조용히' 살지 못하고 식민지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 대항해 시대의 논리인 것이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시대 논리는 오히려 2,3등이면 더욱 불안해 해야 하는 것이다.

1981년 GE의 회장으로 취임한 잭 웰치는 취임 일성으로 "세계 1등 혹은 2등이 되라. 그것이 아니면 과감하게 철수하라"고 일갈했다. 중요한 것은 1등이 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결코 1등이 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1등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아졌다. 이미 2009년 말 기준 우리 제품 중 세계시장 점유율 1위는 총 121개에 달한다. 세계시장 점유율 5위 이내 세계일류 상품 수는 600개에 육박한다. 우리의 전자정부는 세계 1등으로 꼽히고 인천공항은 세계 1등 공항으로 수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 세계 1등의 위치와 능력을 갖춘 것들이 너무나 많지만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그런 꿈이나 도전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줄어들면서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등 하지 않아도 박수를 받는 건 이제 스포츠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로 변할지 모른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