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LA 할리우드 코닥극장.극장용 애니메이션 '업'이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는 자리에 제작사인 픽사애니메이션의 핵심 3인방이 모두 참석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애니메이터 출신으로 현재 월트디즈니의 최고창작책임자(CCO)인 존 래스터,애플에서 쫓겨난 후 픽사 최고경영자(CEO)로 부활을 준비했던 스티브 잡스 애플 CEO,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처음으로 영화를 만든 애드 캣멀 픽사 CEO가 그들이다. 모두 전 세계 창조산업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다.

픽사는 1995년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니모를 찾아서''몬스터주식회사''인크레더블' 등 10여편을 히트시키며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우뚝 섰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할 당시 픽사는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였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1986년 루카스필름으로부터 500만달러에 픽사를 사들일 무렵에도 실패한 사람들의 집합소였고 뚜렷한 비전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잡스는 인수 금액의 10배 이상을 투자해 가장 뛰어난 창조 집단으로 변모시킨 뒤 2006년 75억달러를 받고 디즈니에 되팔았다. 20년간 무려 1500배나 성장한 픽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픽사 이야기》는 픽사가 창조산업의 롤모델로 거듭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딱딱한 분석서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세 리더의 흥미로운 인생사로 풀어낸다. 그리고 탁월한 흥행성을 갖춘 작품들을 만들기까지 선택한 방법들도 소개한다. 한 마디로 예술과 기술,사업이라는 세 가지 측면의 투쟁이 한군데 얽힌 이야기다.

픽사가 성공에 이른 방법들을 간추려보면 천재들의 영감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대화와 노력을 통해서다. 직원들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을 갖춘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단순한 돈벌이보다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게 시련을 이겨낸 동력이기도 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만들면서 본질적인 문제인 스토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숱한 작품을 만들어 오는 동안 첫째도 스토리,둘째도 스토리를 강조했다. 때문에 픽사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만 평균 2년 정도 투자한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내 감독들과 스토리 작가들이 모인 '브레인 트러스트'를 거쳐 나온다. 브레인 트러스트는 존 래스터와 8명의 베테랑 감독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도움이 필요할 경우 이 트러스트를 소집해 지금까지 작업한 버전을 보여준 뒤 토론을 벌인다. 조언에 강제성은 없고 최종 결정권은 해당 작품 감독이 갖는다.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교환하는 동안 문제는 해결된다. 천재적인 개인이 아니라 집단 지성의 공동 창작이 창작력의 핵심이다. 그들의 창조역량은 끈질긴 노력과 불확실성에 대한 투쟁으로 얻어진다.

작품이 끝나면 직원을 해고하는 일반 영화사와 달리 픽사는 인재들을 보유하기 위해 고용을 지속한다. 스토리 팀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제작 중일 때 다음 스토리를 만든다. 내부 교육기관인 픽사대학교는 실무교육 외에도 직원들의 시야를 넓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