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잉어 민화 걸어두면 대입 합격 문제없다?
모란과 나비 등 전래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생활도자기에 담아내고 있는 도예가 이기영씨(이기영그릇제작소 대표).10년 전만 해도 그는 정치경제학자였다. 학부에서 외교학을 전공했던 그는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에 눈을 떴고,프랑스 그르노블 2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국제민간경제협의회와 현대경제연구원을 거쳐 경기개발연구소에서 근무하던 2000년,그는 나이 마흔다섯에 경제학을 미련 없이 접었다. 당시 이천도자기엑스포 사후 관리를 맡으면서 도자기와 인연을 맺고 완전히 도자기와 전통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도예가로 변신한 그가 또 하나 매진하는 분야가 있다. 도자기에 넣을 문양과 도안을 궁리하다 눈뜨게 된 전통 민화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이씨가 민화 작가 서공임씨와 합작해 내놓은 책 《민화에 홀리다》는 '민화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화두 삼아 독자들을 민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사실 민화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언제 처음 그려졌는지,누가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잘라 말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민화인지 규정할 전문가도 없다. 얼마나 많은 그림이 그려졌는지,국내에는 얼마나 있고,해외로 흘러간 것은 얼마나 되는지도 미스터리다.

그러나 정작 민화를 그린 우리보다 외국인들이 민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민화를 수집 · 연구하고 '민화'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였다. 2001년 10월부터 석 달간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한국의 민화 전시회가 열렸을 때 관람객들은 조선 민화가 보여주는 색감,풍부한 이야기,생동감,판타지,휴머니즘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책마을] 잉어 민화 걸어두면 대입 합격 문제없다?
민화가 처음 등장한 200여년 전의 시대는 사대부 문인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시골장터의 '환쟁이',즉 떠돌이 화가는 민화를 그렸고,도화서 화원이나 지방의 화사들도 때로는 민화를 그렸을 것으로 저자는 추정한다. '기산풍속화첩'을 남긴 김준근의 기산공방이나 18세기 화가 강희언의 집 담졸헌은 대중예술의 공장이었다.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조선 르네상스기에는 신분제가 동요하면서 양반계급이 독점해온 예술 영역이 더 낮은 신분으로 확산됐다. 조선 후기에 상업자본가가 탄생하고 자본주의의 씨앗이 싹트면서 부를 축적한 중간계층에 의해 새롭고 실용정신을 담은 미술 양식으로서 민화가 등장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어느날 갑자기 민화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미술을 새롭게 해석하고 다듬어 진화한 것이 민화라는 얘기다. 따라서 민화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변혁의 기운에 휩싸였던 18~19세기의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민화의 기원부터 진화 과정,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탐정이 수사하듯 흥미롭게 파헤친다. 그가 설명하는 민화의 상징 세계도 흥미롭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고 십장생은 불로장생을 기원한다는 의미다. 100명의 동자를 그린 그림은 사내아이를 낳으려는 당시의 습속을 담고 있고,잉어 그림은 장원급제를 뜻했다. 옛 중국 황허강 상류의 용문을 뛰어넘은 잉어가 용이 됐다는 '등용문(登龍門)'의 고사에서 비롯된 얘기다. 따라서 잉어를 두 마리 그린 그림은 두 차례의 과거,즉 향시(鄕試)와 전시(殿試)에 연거푸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수능과 논술에 잇달아 합격하라는 뜻으로 잉어 두 마리가 그려진 그림을 걸어두면 어떨까.

은유와 환유,직설화법,과장과 생략,사실과 상상이 어우러진 민화의 표현 양식도 다양하다. 저자는 이처럼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도 다양한 표현 체계와 대상을 가진 민화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200년 전 민화는 종이뿐만 아니라 벽,문,장롱,반닫이,문틀,여인의 옷고름과 치마,꽃신 등 어디에나 등장했다. 저자는 "아무런 제약도,한계도,금기도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민화의 힘"이라며 "민화 속에는 글로벌 DNA가 들어있다"고 설명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