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지난달 25일 발표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로 제시했다. 하지만 불과 보름도 안 돼 정부의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렸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2011년도 예산안 요구 현황'을 들여다보면 부처별로 내년 예산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정부가 당초 '중기 재정운용계획'에서 제시한 내년 예산의 마지노선을 넘어섰다.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 총계는 312조9000억원.정부가 중기 재정운용계획상 제시한 306조6000억원보다 6조3000억원 많다. 정부 씀씀이가 커지면 그만큼 재정상태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복지예산 요구 증가액이 가장 많아

각 부처의 내년 예산요구액은 올해 총지출 292조8000억원보다 6.9%(20조1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요구액 증가율(4.9%)보다 2%포인트 높다.

분야별로 보면 복지 관련 예산 요구액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올해 예산 대비 6조1000억원 증가한 87조3000억원에 달했다. 증가율은 7.4%로 전체 평균인 6.9%보다 높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올린 예산들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특히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지원 중증장애인연금 4대공적연금(국민 · 사학 · 공무원 · 군인) 등이 4조1000억원으로 복지예산 요구 증액분의 67%를 차지했다.

복지 예산 다음으로 요구액이 많이 늘어난 분야는 일반공공행정(4조7000억원) 교육(2조2000억원) 연구 · 개발(R&D · 1조5000억원) 외교 · 통일(4000억원) 등이었다.

증가율만 따지면 외교 · 통일(11.8%) 일반공공행정(9.7%) 등도 높았으나 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자금과 공공 일자리 지원 예산 요구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산 증액을 요구한 국책과제 중에서는 국방전력 유지와 방위력 개선 부문이 2조원으로 가장 많았고 녹색성장 · 신성장동력(1조5000억원),보금자리 주택 건설(1조4000억원),광역경제권 발전 전략을 위한 30대 선도 프로젝트(9000억원),4대강 살리기 관련 사회간접자본(SOC)사업(1000억원) 등의 순이었다. 내국세 증가에 따른 지방교부세도 4조7000억원이나 더 달라는 요구가 들어왔다.

◆올해 예산조정 쉽지 않을 듯

재정부는 각 부처가 제출한 내년 예산 요구안을 갖고 앞으로 석 달간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인다. 각 부처는 요구한 예산안을 그대로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로비에 나설 것이고,이에 맞서 재정부는 예산안을 깎기 위해 버티기 작전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물은 10월 초 국회에 제출된다.

지난해에는 재정부가 힘겨루기에서 이겼다. 당초 각 부처 예산요구안 총액은 298조5000억원이었으나 국회로 넘어가기 전에 확정한 정부 예산안은 287조8000억원으로 줄었다. 재정부가 각 부처 요구안에서 10조7000억원이나 깎은 것이다.

하지만 국회 통과과정에서 292조8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국회가 지역민이나 이익단체 로비에 밀려 재정부가 깎은 예산 중 일부를 원상복귀시킨 탓이다.

올해는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재정부는 보고 있다. 6 · 2 지방선거 이후 힘이 세진 야당이 무상급식 등 복지 예산을 늘리라고 주장할 것이 뻔한 데다 여당조차 청와대의 친서민 정책 기조에 부응하고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각종 서민지원 복지예산 증액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종태/서욱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