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방 좀 고쳐주세요. 조만간 해외여행 때 사용할 계획인데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

한 백화점의 우량고객(VIP)인 A사장은 3년 전 비서에게 10년 이상 '묵은' 루이비통 여행가방을 건넸다. 가방은 그야말로 '중환자' 상태였다. 내부 지지대가 부서진 탓에 네모 반듯해야 할 가방 골격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루이비통 매장 직원은 "프랑스 본사 수선실로 보내야 하는 만큼 몇 달 기다려야 한다"며 "비용은 400만원 정도 예상해야 된다"고 말했다. 시간을 맞추려면 국내 수선업체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 끝에 명품 전문 수선업체를 찾은 비서는 맡긴 지 일주일 만에 제 모습을 갖춘 가방을 되돌려받았다. '성형수술' 비용은 50만원에도 못 미쳤다.
◆명품 수선업체 급성장

국내 명품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웃음 짓는 곳은 비단 명품업체뿐이 아니다. 명품 수선업체,중고 명품숍,명품 전당포,명품 대여점 등 '명품 파생산업'에 뛰어든 업체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서울 명동에 있는 명동사는 명품 수선업계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1960년대 '구두병원'으로 시작한 이 업체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서울 충무로 본점과 롯데 부산 센텀점을 비롯 전국에 6개 지사를 두고 있다.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숙련공만 80여명을 두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명동스타사 강남사 영동사 한길사 등 내로라 하는 명품 수선집들이 있지만,규모 면에선 아직 명동사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7일 오후 5시께 명동사 '명동 공장'에선 숙련공 10여명이 구찌 버버리 등 명품 가방을 하나씩 붙잡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매일 새로 태어나는 명품은 평균 100개.30년 경력의 베테랑 숙련공인 김동철씨(51)는 코치 가방을 들어보이며 "오늘 내 손을 거친 8번째 명품"이라며 "30만원이면 10년 묵은 구찌 가방을 새것처럼 바꿔준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명동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명품 브랜드에 맡길 때보다 수선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에 맡길 경우 보통은 10~15일 정도 걸리지만,훼손 상태가 심한 제품은 해외 본사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명동사에선 웬만한 수선은 일주일이면 끝낸다. 수선비도 해당 매장에 맡겼을 때보다 20~30% 저렴하다. 손잡이 교체는 3만~20만원,염색은 5만~40만원 등이다.

단점은 가죽을 덧대거나 지퍼를 바꿀 때 수선을 의뢰한 제품과 다른 재료를 쓸 수 있다는 것.하지만 의뢰한 제품과 최대한 비슷한 원재료를 다수 확보한 데다 일부 명품업체에선 가죽 등 원재료를 직접 건네면서 수선을 맡기는 경우도 있어 별다른 차이는 없다는 것이 오창수 명동사 사장의 설명이다. 오 사장은 "수선 의뢰를 받은 제품의 20%는 국내에 자체 수선센터를 두지 않은 명품 브랜드들이 맡기는 물량"이라며 "2000년대 들어 명품시장이 커지면서 우리 회사도 죽순처럼 쑥쑥 자랐다"고 설명했다.

◆중고 명품숍 · 명품 대여업도 성황

중고 명품숍들이 몰려 있는 명품시장의 메카는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사거리다. 이 지역에는 현재 30여개 중고 명품 가방숍과 5곳 정도의 중고 시계숍이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은 2003년 이후 들어선 점포들이다. 구입한 지 2~3년 지난 명품을 처분하려는 '명품 얼리 어답터'들과 저렴하게 명품을 구입하려는 '알뜰 명품족'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중고숍은 대개 정상 판매가격의 30~50% 정도 가격에 중고 명품을 매입한 뒤 15~18% 수준의 마진을 붙여 되판다. 김중화 탑스 사장은 "시계는 의류와 달리 깨끗하게 수리하면 낡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정상가의 70%까지 받을 수 있다"며 "고객 수요가 많은 오메가와 롤렉스가 가격을 잘 받는 편"이라고 전했다.

인터넷 중고 명품숍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중고명품 쇼핑몰인 '필웨이'에서는 하루 평균 2000개가 거래되고 있다. 김중한 필웨이 영업홍보팀장은 "2만여명의 회원이 총 40만개에 달하는 자신의 중고품을 온라인에 등록해 놓았다"며 "2002년 설립 후 회사 매출이 매년 20% 이상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혜경 인천대 교수(패션산업학과)는 "명품의 유행주기가 짧아지면서 구입할 때부터 '유행이 지나면 되팔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명품 가방과 옷을 빌려주는 업체도 성업 중이다. 대학 졸업식이나 입사 면접 등 패션 감각을 선보여야 할 때 제격이란 소문이 난 덕분이다. 하루 10만원이면 상 · 하의와 가방,구두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할 수 있다.

가방을 220여개 보유한 팰리스룩의 박지훈 사장은 "졸업 · 입학 시즌과 각종 모임이 많은 봄 · 여름에는 대여물량이 100건을 넘는 경우도 많다"며 "한 달에 30만원씩 정기적으로 내고 매월 가방을 바꿔 메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강유현/오상헌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