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 현황 파악을 위해 2주간 한국 정부와의 연례협의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한 지난 6일.수비르 랄 IMF 한국담당 과장 등 연례협의단은 붉은악마 복장을 하고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실에 들어섰다. 랄 과장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선전을 축하하기 위해 입고 왔다"고 말했지만 일각에선 "외환위기 당시 한국인에게 부정적 인상을 심은 IMF의 이미지를 개선해보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IMF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취했던 일방적인 정책개입에 대한 자기 반성에 나선다. 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IMF 주최로 12일부터 이틀간 대전에서 열리는 '아시아 컨퍼런스'에서 외환위기 당시 IMF 역할을 평가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이 자리에는 아눕 싱 IMF 아 · 태 담당 국장과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담당 재무관 등이 나와 외환위기 당시 IMF가 아시아 국가에 취했던 고강도 처방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기조 연설을 한 후 국내 대학생 100여명과 'IMF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 시간을 갖는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컨퍼런스의 테마 중 하나는 IMF의 자기 반성"이라며 "토론회에서 IMF는 외환위기 당시 자신들의 정책 수단에 일부 잘못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로스 칸 총재는 지난 6월 초에도 부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때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단행했던 혹독한 구제금융 방식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4월 워싱턴 G20 재무장관 회의 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IMF가 일방적인 룰을 적용하고 초긴축 정책을 취해 한국 국민이 많은 고통을 당했다"고 지적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IMF의 구제금융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윤 장관이 처음은 아니다. IMF가 과거 남미 국가에 적용했던 초긴축 정책 등 전통적인 프로그램을 위기 원인이 다른 아시아에도 똑같이 적용한 것을 놓고 제프리 삭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등이 정면 비판하는 등 국제적인 논쟁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IMF 내부에서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취했던 고금리 및 초긴축 재정정책이 오히려 생존 가능한 기업을 도산으로 내몰고 대량 실업을 초래하는 등 위기를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시아 등 신흥 · 개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IMF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자기반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IMF가 새로운 구제금융 프로그램인 '신축적 공여제도(FCL)'를 내놓았으나 이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었다.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한번 이용한 국가는 '문제아'로 인식돼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드는 일종의 '낙인효과'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IMF 역할 재고론에다 지배구조 개혁 논의까지 이뤄지면서 IMF 스스로 자기 변신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IMF의 새로운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대한 결론도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