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전 세계에 '복지예산'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넣었다. 세금 수입을 감안하지 않은 복지예산 지출은 국가 재정을 파탄내고 위기 대응 능력을 고갈시킨다는 것이 이번 위기의 교훈이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8일 각 부처로부터 취합한 내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요구안을 들여다보면 우리 정부는 이 같은 교훈을 전혀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재정부는 지난달 말까지 각 부처가 제출한 2011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요구안을 분석한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이 복지 관련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6조1000억원 더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올해 81조2000억원에서 내년 87조3000억원으로 증액해 달라는 것이다.

복지예산 증가율(요구안 기준)은 7.4%로 정부 총 지출 증가율(6.9%)보다 높다. 류성걸 재정부 예산실장은 "복지예산 증가율이 전년 10.1%보다는 낮아졌지만 복지부의 경우 12% 정도 증액을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복지 예산안 가운데 4대 공적연금(국민연금 · 사학연금 · 공무원연금 · 군인연금)을 비롯해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중증장애인연금 등 경직성 예산 요구액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전체 복지예산 증액 요구분(6조1000억원) 가운데 67%인 4조1000억원이 이들 분야에 집중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연금 건강보험 등은 한 번 늘어나면 줄이기 힘든 데다 급속한 고령화로 증가 압력이 매우 높다"며 "초기부터 적절히 통제하지 못할 경우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복지예산 연평균 증가율은 17.4%로 정부 총 지출 증가율 7.1%를 10%포인트 웃돈다. 복지예산이 전체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8%로 가장 높다. 특히 경직성 예산인 기초생활보장과 공적연금은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복지예산이 이처럼 급속도로 늘어나면 몇 년 후에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며 "정부의 방만한 운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금과 건강보험의 과다한 지출이 결국 재정 파탄으로 이어진 남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