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3시.부산신항 부산신항만㈜ 터미널 8번 선석으로 거대한 배 한 척이 어둠을 뚫고 들어왔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인 스위스 MSC의 1만4000TEU급(15만1559t) 이레네호였다. 축구장 3개 크기에,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만3789개를 싣고 항해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박호철 부산항만공사 마케팅팀장은 "배에 가득 실은 컨테이너를 일렬로 세울 경우 부산~경주 간 거리인 60㎞에 이른다"며 "부산신항에 괴물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레네호의 부산신항 입항은 부산신항의 마케팅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이 입항해 컨테이너를 싣는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짐으로써 부산신항의 규모와 첨단 시설을 자랑할 수 있다.

1만4000TEU급 선박은 대형 항만에만 들어갈 수 있다. 길이 366m,폭 51m, 높이 68m 규모인 선박이 접안하려면 적정 수심과 항만시설,하역시설 등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 한다. 부산신항의 경우 운항 수심은 15m다. 만선일 경우 16.5m 수심이 필요하지만 만선인 경우가 거의 없어 현재도 초대형 선박 입항이 가능하다. 구라치노 미카엘 이레네호 선장은 "부산신항의 위치와 시설이 좋아 마음놓고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레네호는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선박이라는 것과 이날 거제조선소를 떠나 첫 항해에 나섰다는 점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레네호는 컨테이너 1200개를 싣고 이날 부산신항을 출발해 중국 칭다오,닝보를 거쳐 싱가포르~수에즈운하~유럽으로 운항한다.

이 배의 발주가격은 1억6000만달러로 발주처는 세계 2위 선사인 MSC이다. 이레네호는 크지만 운항 선원은 22명에 불과하다. 주로 이탈리아와 영국 등 유럽계 사람이다. 이처럼 선원이 적은 것은 선박 자체가 국제 항해기준에 따라 운항장치 등이 자동화돼 있어서다.

특히 첨단 엔진과 공기정화,냉각시설로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선박 건조를 담당한 아넬로 마스텔로네 책임자는 "다른 선박보다 10% 이상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미래 선박"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컨테이너 주종인 7000~8000TEU급 선박 2척을 만드는 것보다 1만TEU급 이상짜리 한 척을 만드는 것이 30% 정도 경제성이 높아 세계적인 선사들은 점점 초대형 선박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1만TEU급 선박의 부산신항 기항은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실제 이레네호 같은 대형 선박 한 척이 입항하면 입항료와 접안료,운송료 등으로 1억5000만원을 지급한다. 첨단 초대형선박이 입항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어서 부산신항의 국제적 위상도 올라간다. 이른바 이레네호 효과다.

노기태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기항함에 따라 다른 선사들을 상대로 한 물량 유치뿐 아니라 부산신항의 대외 신인도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더 큰 선박이 만선 상태로 접안할 수 있도록 수심을 1m 이상 준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신항은 1만5000TEU급이 접안하기 위해선 수심 17m를 확보해야 한다. 이날 접안에 만족감을 나타낸 MSC 측은 오는 15일 같은 규모의 베티나호를 이곳에 입항시킬 예정이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