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력 판매에 경쟁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독점력을 가진 거대 공기업 한국전력이 경영 효율화에 더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전자회사를 독립공기업 등의 형태로 한전에서 완전히 떼내라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전이 주장한 발전자회사와의 통합에 대해 사실상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물론 쟁점인 한수원 통합 등에 대한 방향성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지금 체제를 크게 바꾸는 개편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력 판매 경쟁체제 도입해야

KDI는 전압별 요금체계 전환에 맞춰 산업 · 일반 · 교육용 전력에 판매경쟁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경우 민간 업체는 물론이고 화력발전 5사의 판매 겸업도 허용된다. 한전의 판매 부문은 독립공사로 전환되거나 자회사로 분리된 후 장기적으로는 독립공사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KDI는 판매경쟁에 따른 요금 상승을 막기 위해 기존 발전소는 정부와 '가격 규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한전은 기본요금을,통신사업자 등 신규 사업자는 경쟁가격을 각각 제안해 소비자가 골라 쓸 수 있게 된다. KDI는 경쟁 체제가 도입돼도 전력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브랜드 인지도 등이 낮은 신규 사업자들이 사실상 '원가'에 가까운 한전의 기본요금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발전자회사 통합은 힘들 듯

KDI는 발전자회사 간의 경쟁방식 도입으로 연료구매비 절감,건설단가 감축,발전기 이용률 향상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전 측에서 통합의 주요 논리로 주장해 온 연료 통합 구매 효과에 대해서도 개별 구매의 장점이 훨씬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급자 위주 시장인 유연탄의 특성상 대량 구매를 통한 가격 할인이 어렵고,오히려 개별 구매를 통한 위험분산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결국 한전이 주장해 온 5개 발전자회사와의 통합은 힘들어 졌다.

KDI는 경쟁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오히려 한전의 유상감자나 한전과 발전사의 재합병 이후 인적분할 방식으로 발전자회사를 아예 독립시키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발전자회사를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시장형 공기업이 되면 현재 한전 사장이 맡는 경영평가 기능이 기획재정부로 이관돼 사실상 한전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지역이기주의 등 갈등 고조

9일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바람직한 전력산업 구조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는 경주 시민 등의 시위로 파행으로 끝났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제2차관의 인사말로 시작한 토론회 초반에 300여명의 경주 시민들이 일제히 단상을 기습 점거하면서 농성을 벌였다. 경주 시민들은 한국수력원자력을 한전과 통합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이 한전에 통합되면 경주로의 이전이 무산되기 때문이다. 이날 발전노조도 경주 시민 등과 치열한 몸싸움 등을 벌였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적지않은 갈등이 있을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집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전력산업 개편을 밀어붙일 정부의 힘이 많이 떨어졌다"며 "아직 정부 최종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재 체제에서 많이 바뀌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이정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