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9일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과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전격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당초 8~9월께 인상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의외로 한두 달 빨라졌다는 얘기다. 한은은 이에 대해 충분히 사전에 시그널을 줬다고 강조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단행된 데는 다른 배경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유럽 위기 이겨낼 수 있다고 판단

김중수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선진국 중 일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경제를 운용하는 데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0.2%의 플러스 성장을 이뤘다.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 외 플러스 성장을 한 나라는 호주와 폴란드밖에 없다. 한국 경제는 올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8.1% 성장이라는 '서프라이즈'를 만들어냈다.

2분기에도 7%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거린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충분히 이겨내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정부 역시 올 한 해 우리 경제가 6% 근처의 높은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이와 더불어 세계경제에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차 하강)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총재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 전망 등을 인용해 세계경제가 당초 전망보다 더 높은 성장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안정이 한은 설립 목적"

인플레이션을 판단하는 주요 잣대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과 6월 각각 2.7%와 2.6%를 나타냈다. 한은의 중기물가안정 목표치(3%)를 밑도는 수준이다.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하더라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다면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은은 하반기부터 이 같은 저물가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경기회복에 따른 소득증가로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선행하는 생산자물가는 5월과 6월 연속으로 4.6%(전년 동기 대비) 상승했다.

김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에 3%를 넘을 수 있으며,내년엔 한 해 평균으로 3%를 웃돌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법 1조에 '물가안정'이 설립 목적으로 규정돼 있는 한은으로선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총재가 "금통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 의지보다 한두 달 앞서가

한은 임직원들과 금통위원들은 기준금리와 관련해 정부가 이러쿵저러쿵 평가와 전망을 내놓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왔다. 사실상 정부가 한은의 통화정책에 간섭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었다. 올초부터 시작된 기획재정부 차관의 열석발언권(금통위 회의에 출석해 발언하는 것)도 폐지돼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지난달에 금통위원들이 주장해 재정부 차관이 먼저 발언하고 퇴장하는 방식으로 금통위 회의 방식이 바뀌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그간 "2분기 경제상황을 살펴본 뒤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지의 발언을 해 왔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가 7월 말에 나오니 7월까지 금리를 올려서는 안된다는 게 정부의 뜻으로 해석됐다. 만약 금통위가 이처럼 했다면 한은 전체가 '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난을 뒤집어 쓸 것이라는 게 한은의 분위기였다. 때문에 정부 의도와는 다르게,즉 한두 달 빨리 인상하는 게 독립성을 지키는 것으로 한은 관계자들은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금통위원들은 다음 주 월요일(12일) 발표될 낙관적 수준의 경제전망 수치들을 미리 접해 금리 인상 타이밍을 잡는 데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는 달리 한은이 정부와 협력해 국면전환용으로 금리인상 카드를 미리 꺼냈다는 설(說)도 나오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선진국민연대 파문 등으로 정부와 여당이 코너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금리인상을 예상보다 빨리 단행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그 같은 분석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시기가 다소 빠르기는 했지만 금리 인상이 필요했다는 점에 공감대를 표시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한은이 2분기 경기 흐름이 괜찮다고 판단했을 것이며 남유럽 사태도 어느 정도 해결 기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언젠가 한번은 올리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원도 "금리인상이 다가왔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며 "정책기조를 본격 선회하는 것은 아니기에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준동/이상은 기자 jdpower@hankyung.com